널리 알려진 의좋은 형제 이야기와는 또 다른, 두 며느리의 지혜와 정직함이 빚어낸 따뜻한 조선 후기 민담 '의좋은 동서'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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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바른 안마당과 두 멍석
조선 후기, 높은 울타리 안에 마당을 나란히 맞대고 살아가던 형제 집안이 있었습니다. 큰집은 넉넉한 논밭 덕분에 곳간에 곡식이 가득했지만, 아우네 작은집은 해마다 봄이 오면 보릿고개를 넘기조차 숨이 찰 만큼 살림이 팍팍했지요. 집안의 대소사는 남정네들이 도맡아 결정하는 법이라 했지만, 매일 아침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곡식을 갈무리하며 살림의 결을 쥐고 흔드는 이들은 안마당을 지키는 며느리들이었습니다.
마침내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고 따스한 봄볕이 마당 가득 차오르자, 큰동서는 겨우내 묵혀둔 나락을 말리려고 큼직한 멍석을 활짝 폈습니다. 샛노란 벼 알갱이가 멍석 위로 자르르 쏟아져 내리며 구수한 흙내와 햇살 냄새를 풍겼지요. 그때 사립문 쪽에서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난한 작은동서가 품에 작은 바구니를 안고 수줍은 얼굴로 들어선 것이었답니다.
“형님, 마당에 볕이 참 좋습니다. 저희 집 나락도 조금 눅눅해져서 그런데, 마당 한쪽에 멍석을 펴고 말려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저쪽 해 잘 드는 쪽에 펴고 널어 두세요.”
큰동서의 따뜻한 허락에 작은동서는 마당 귀퉁이에 작고 낡은 멍석을 깔고, 얼마 되지 않는 벼를 조심스레 펼쳐놓았습니다. 큰집의 그득한 곡식 옆에 놓인 작은집의 나락은 애처로울 만큼 얄팍했지만, 두 사람은 말없이 부지런히 갈퀴질을 하며 마당에 봄기운을 채워갔습니다.

마당에 쏟아진 비밀 한 됫박
두 며느리가 점심 채비를 하러 부엌으로 들어간 사이, 툇마루 한켠에 가만히 앉아 계시던 시어머니가 슬그머니 짚신을 꿰어 신었습니다. 늘 밥상에 풀죽만 올라오는 가난한 작은아들 내외가 늘 눈에 밟혀 가슴 한구석이 미어지던 참이었지요. 시어머니는 사방을 휘휘 둘러본 뒤, 큰집 멍석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두 손 가득 나락을 푹 퍼 담았습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어머니는 큰며느리 몰래 작은동서의 멍석 위로 곡식을 훌훌 털어 넣었습니다. 한 번으로 모자라 한 되박은 족히 될 나락을 슬그머니 더 얹어놓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지요. 그러자 얄팍하던 작은동서의 멍석 가운데가 볼록하게 솟아올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상을 물린 작은동서가 벼를 뒤집으러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자신의 멍석에 다가간 작은동서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분명 자신이 펴둔 것은 바구니 바닥에 겨우 차던 적은 양이었는데, 마당 한가운데 벼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작은동서는 멍석 곁에 멈추어 서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바람결에 날아온 곡식일 리도 없고, 하늘에서 벼가 뚝 떨어졌을 리도 만무했지요. 시어머니가 베푼 안타까운 손길이라는 것을 짐작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으나, 작은동서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며 깊은 고민에 잠겼습니다.

제 몫만 담아낸 갈퀴질
작은동서는 뙤약볕 아래서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당장 저녁거리가 아쉬운 형편이었으니, 모르는 척 자루에 쓸어 담아가면 아이들에게 따뜻한 쌀밥이라도 지어 먹일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작은동서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고는 쭈그려 앉아 두 손으로 곡식을 조심스럽게 가르기 시작했지요.
작은동서는 자신이 원래 가져왔던 됫박의 분량을 정확히 가늠하여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남은 한 됫박 남짓한 나락을 두 손으로 고스란히 모아 들고는, 큰집 멍석으로 걸어가 그 위에 흩뿌려진 제자리로 털어 넣었습니다. 낟알 하나 축내지 않고 돌려놓는 손길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지요.
그런데 그때, 큰집 대청마루 문틈으로 그 광경을 숨죽여 지켜보던 눈이 있었습니다. 바로 큰동서였습니다. 시어머니의 몰래한 밀가림을 진작 눈치채고 작은동서가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묵묵히 지켜보던 참이었지요. 남의 곡식을 욕심내기는커녕 딱 제 몫만 챙겨 돌려놓는 올곧은 모습에, 큰동서의 가슴속에서 진한 울림이 번져 나갔습니다.
‘가난 속에서도 저토록 마음의 결이 맑고 곱다니. 저런 동서를 두고 우리만 쌀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큰동서는 마루 문을 조용히 닫으며, 남편에게도 아직 털어놓지 않은 중대한 결심을 마음속으로 굳게 다졌습니다.

달밤의 술상과 논문서
그날 저녁, 큰동서는 부엌에 불을 지피고 상다리가 휘어질 듯 푸짐한 주안상을 차려냈습니다. 노릇노릇 부쳐낸 전에 기름진 고기반찬, 그리고 목넘김이 부드러운 약주까지 걸판지게 올려 남편 앞에 내밀었지요. 평소 검소하던 아내의 난데없는 호의에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아니, 임자. 오늘 무슨 좋은 날이라도 있소? 상이 이리도 거창하니 말이오.”
“그저 바깥양반 농사일에 힘 좀 내시라고 작은 정성을 차려본 것입니다. 어서 드셔보세요.”
큰동서는 환하게 웃으며 남편의 빈 잔에 쉴 새 없이 술을 채워 넣었습니다. 흥이 오른 남편은 아내가 권하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고 달게 받아 마셨고, 달이 기울 무렵에는 혀가 꼬여 횡설수설하다가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곯아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코를 골며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큰동서는 장롱 깊숙한 곳을 열었습니다. 겹겹이 싸인 보자기 속에서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집안의 기름진 논문서 한장이었습니다. 큰동서는 망설임 없이 그 문서를 품에 품고 어둠을 틈타 작은집 사립문을 살짝 두드렸습니다.
“서방님, 안에 계십니까? 형수입니다.”
잠결에 놀라 뛰어나온 시동생에게 큰동서는 논문서를 조용히 쥐여주었습니다. 시동생이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지만, 큰동서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단호했습니다.
“형님이 낮부터 서방님네 살림 걱정을 하더니, 마침내 마음을 굳히고 이 문서를 전하라 하셨습니다. 거절하지 마시고 받아 농사를 지으세요. 내일 아침 형님이 묻거든, 어젯밤 술김에 직접 주셨다고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남아일언중천금
이튿날 아침, 남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며 부스스 눈을 떴습니다. 개운치 않은 속을 달래려 문갑 쪽으로 가던 남편은 문득 서랍이 휑하게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장롱 안을 샅샅이 뒤지던 남편의 다급한 비명이 안마당을 조용히 깨웠지요.
“임자! 임자, 이리 와보시오! 우리 논문서가 감쪽같이 사라졌소! 집에 도둑이 든 게 분명하오!”
큰동서는 마당을 쓸다 말고 태연하게 빗자루를 돌려 세우며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도둑이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 마세요. 어젯밤 술에 취해 시동생을 불러놓고 호기롭게 문서를 쥐여주신 분이 바로 서방님이 아니십니까? 기억이 나지 않으시면 아우님께 직접 물어보시지요.”
남편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버선발 채로 작은집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마당에서 마주친 시동생은 형수가 시킨 대로 두 손을 모으며 공손히 입을 열었습니다.
“형님, 어젯밤에 제게 이 귀한 문서를 주시며 형제간에 함께 잘살아 보자고 하셨잖습니까. 형님의 크신 은혜, 평생 잊지 않고 농사 잘 짓겠습니다.”
자신이 정말 술김에 그런 대단한 결정을 내렸단 말인가, 남편이 당황하여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서 있자, 뒤따라온 큰동서가 단호하고도 명료한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습니다.
“사내대장부가 한 번 입 밖에 낸 말은 천금보다 무겁다고 했습니다. 어찌 피를 나눈 친동생에게 손수 건넨 논문서를 이제 와서 주워 담으려 하십니까?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 하였으니, 아우님을 도운 멋진 형님으로 남으셔야지요.”
아내의 당당한 핀잔과 시동생의 눈물겨운 감사 인사 앞에, 남편은 헛기침을 에헴 하고 내뱉으며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답니다.
“허허, 그래… 내가 술김에 한 말이긴 하나, 형으로서 아우를 돕겠다는 뜻이었거늘… 어찌 사내가 한 말을 도로 물릴 수 있겠느냐. 그 논으로 열심히 농사지어 보거라.”
남편의 허탈하면서도 너그러운 웃음소리가 마당을 메우자, 두 동서는 서로를 향해 따뜻한 미소를 나누었습니다. 여인들의 곧은 정직과 속 깊은 지혜가 가부장의 엄한 법도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고, 그날 이후 두 집안은 멍석 위에 쌓인 곡식처럼 든든하게 번창하며 대대로 깊은 우애를 나누었답니다.

‘의좋은 동서’는 조선 후기 가부장제가 확립된 이후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래 민담입니다. 널리 알려진 형제 중심의 미담과 달리, 이 설화는 시집온 여성인 큰동서와 작은동서가 주체가 되어 일상 문화 속에서 형제간의 우애와 가족의 화목을 지켜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소품으로 등장하는 멍석은 나락을 말리는 등 농경 사회의 일상생활에 널리 사용되던 도구이며, 나락은 멍석에 널어 말리던 곡식입니다. 또한 논문서(땅문서)는 큰동서가 남편을 술에 취하게 한 뒤 시동생에게 내어주는 핵심 문서로 등장합니다. 각편에 따라 남편을 술에 취하게 하는 이유, 남편의 반응, 형이 직접 땅을 주는 방식 등 다양한 변이가 존재합니다.
‘의좋은 동서’ 민담은 오늘날 구비문학 및 민속학 연구를 통해 조선 후기 가족 관계와 여성들의 역할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래 설화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과거 농경 사회의 생활상과 가부장제 속에서 발휘된 가족 간의 화목과 우애를 다룬 이야기로 관련 문헌 및 민속 자료를 통해 그 내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팩트 원장에 근거한 ‘의좋은 동서’의 실제 문화 사실은 조선 후기 가부장제 확립기 이후 형성된 민담이라는 점과, 시집온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우애를 지킨다는 뼈대, 그리고 멍석·나락·논문서 등의 소품 사용으로 한정됩니다. 따라서 이야기 본문에서 다룬 구체적인 대화 내용, 멍석 앞에서 벌어진 내면 갈등, 주안상을 차린 과정, 아침에 벌어진 소동 등의 세부 묘사는 전래 설화를 바탕으로 한 문학적 창작(허구) 영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