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집안이 텅 빈 아침 찾아온 갑작스러운 진통. 초보 아버지가 산파와 함께 전통 출산 도구인 갈중이와 짚을 활용해 아기를 맞이하던 제주의 풍경을 만나보세요.
코테일 이야기책 듣기
천천히, 이야기의 호흡을 따라 들어보세요.
텅 빈 집안에 스쳐 가는 찬 바람
바람 많은 제주 북촌마을에 아침 햇살이 비쳐 들 무렵이었지요. 이날따라 집안 어른들은 물론이고 온 가족이 짚동과 제수 용품을 바리바리 챙겨 먼 친척 집 제사에 가느라 일찌감치 길을 나섰답니다. 마당에는 그저 빗자루 자국과 고요한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지요.
집에 남은 사람은 남편 돌이와 만삭인 아내 순임뿐이었습니다. 돌이는 싸리비를 세워두며 마당 한구석을 둘러보았어요.
“여보, 오늘은 배가 좀 어때요? 식구들이 저녁 늦게나 돌아올 텐데 괜찮겠소?”
순임은 미소를 지으며 불룩한 배를 부드럽게 쓸어내렸지요.
“아직 달이 차려면 며칠 더 남았으니 걱정 말아요. 제사 모시러 간 식구들 생각해서 집이나 얌전히 지키고 있으면 되지요.”
돌이는 안도하며 헛간으로 가 새끼를 꼬려 짚단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저 평온하게 흘러갈 줄 알았던 하루였지요.

갑작스러운 진통과 얼어붙은 남편
그런데 말이지요, 새끼를 반 발쯤 꼬았을 때였습니다. 방 안에서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순임의 가쁜 신음이 흘러나왔어요.
“아이고, 여보…… 여보!”
놀란 돌이가 신짝도 제대로 꿰지 못한 채 문지방을 넘어 들어갔습니다. 순임은 자리옷을 쥐어뜯으며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지요. 이마에는 이미 식은땀이 흥건했습니다.
“순임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응?”
“아기가…… 아기가 나오려나 봐요. 배가 쥐어짜듯 끊어질 것 같아요.”
돌이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버렸습니다. 셋째 아이라고는 하지만 늘 어머니와 집안 여자 어른들이 도맡아 아기를 받았던 터라, 남자인 돌이는 해산 자리에 무엇이 필요한지 전혀 알지 못했거든요. 발만 동동 구르던 돌이가 문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동네 어르신들! 누구 없습니까! 사람 살려요!”
하지만 야속하게도 온 마을 사람들이 친척 집 제사에 불려 가거나 밭일하러 먼 길을 떠나 골목길에는 바람 소리만 휑하니 맴돌 뿐이었습니다.

뜻밖의 발걸음과 막례 할머니의 호통
대문 앞에 털썩 주저앉아 울상이 된 돌이의 귀에 타박타박 지팡이 짚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장독대 곁 돌담길을 지나던 이웃 막례 할머니였지요.
“이 녀석아, 사내대장부가 대문간에서 왜 그리 방정맞게 고함을 질러대누?”
돌이는 구세주를 만난 듯 벌떡 일어나 할머니의 옷소매를 붙들었습니다.
“할머니! 순임이가 아기를 낳으려 합니다! 집에 어른들이 아무도 없어요. 제발 우리 아내 좀 살려주십시오!”
막례 할머니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혀를 끌끌 차며 방 안쪽을 살폈습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순임의 거친 숨소리가 심상치 않았지요. 할머니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는 돌이의 등을 찰싹 내리쳤습니다.
“언제까지 넋 놓고 서 있을 테냐! 산모가 고생하는데 남편이라는 놈이 정신을 못 차려? 어서 부엌으로 뛰어가 솥에 불을 지피고 물을 펄펄 끓여라!”

솥뚜껑을 열고 불을 지피다
돌이는 할머니의 호통에 번쩍 정신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나타나 대신해 주기만을 바랄 때가 아니었지요.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지킬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었습니다.
“물부터 끓이겠습니다!”
돌이는 부엌으로 내달려 장작을 한 아름 안아 들고 아궁이 앞에 앉았습니다. 부싯돌을 쳐 불꽃을 살리고, 마당 가마솥에 물을 가득 채웠지요. 그사이 막례 할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가 돌이에게 소리쳤습니다.
“깨끗한 짚단을 가져와 방바닥에 두툼하게 깔아라! 그리고 안방 궤짝 문이고 벽장문이고 죄다 활짝 열어젖혀!”
돌이는 볏짚을 안아 날라 산실 바닥에 정성껏 펴고는 할머니의 말대로 장롱 문과 반닫이 문을 벌컥벌컥 열었습니다. 부엌 솥뚜껑과 마당 큰 물항아리 뚜껑까지 비껴 열어놓았지요. 닫힌 것을 모두 열어주어야 뱃속의 아기도 막힘없이 순순히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지혜였답니다.
“순임아, 내가 옆에 있어. 조금만 참아봐.”
돌이는 끓인 물을 대야에 담아 방으로 나르며 고통에 일그러진 아내의 손을 꽉 쥐어주었습니다.

갈중이를 펼쳐 들고 맞이한 새 숨결
진통은 점점 거세져 순임의 비명이 방 안을 흔들었습니다. 막례 할머니는 문간에서 땀을 닦으며 다급히 외쳤지요.
“이제 머리가 보인다! 돌이야, 어서 깨끗한 갈중이를 가져와라! 다른 헝겊 찾을 새가 없다!”
감물로 곱게 물들여 빳빳하고 질긴 갈중이는 땀과 피를 잘 타지 않고 씻어내기 좋은 옷이었지요. 돌이는 벽에 걸려 있던 단정하고 깨끗한 갈중이를 걷어 품에 활짝 펼쳐 들었습니다. 덜덜 떨리던 두 손이 순임의 가쁜 호흡을 마주하자 거짓말처럼 단단하게 굳어졌지요.
“순임이, 한 번만 더 힘을 내요! 내가 여기 있소!”
“으아아악!”
순임이 온 힘을 다해 마지막 숨을 토해내던 그 찰나, 마침내 미끄러지듯 작고 붉은 생명이 돌이의 손바닥 위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돌이는 온몸에 번지는 뜨거운 전율을 느끼며 펼쳐 둔 갈중이로 갓 태어난 아이를 조심스레 감싸 안았어요.
“응애! 으앙-!”
맑고 높은 울음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셋째 딸이었습니다. 순임은 지친 숨을 몰아쉬며 땀투성이가 된 남편과 아이를 보며 눈물을 흘렸고, 돌이는 갈중이에 싸인 핏덩이를 안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답니다.

돌아온 가족들과 품 안의 따스함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기울 무렵, 먼 길을 떠났던 가족들이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제사를 마치고 짚동과 바구니를 이고 지고 돌아온 어른들은 활짝 열린 대문과 마당의 열린 솥뚜껑을 보고 깜짝 놀랐지요.
“이게 무슨 일이냐? 문들은 왜 이리 다 열려 있고…… 순임이는 괜찮은 게냐?”
어머니가 다급하게 신을 벗고 방으로 뛰어들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만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방 안에는 깨끗하게 짚이 깔려 있고, 땀범벅이 된 돌이가 손때 묻은 갈중이 포대기로 아이를 소중히 안은 채 순임의 이마를 닦아주고 있었거든요. 붉은 포대기 틈새로 셋째 딸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고요히 들려왔지요.
“어머니, 우리 셋째 딸입니다. 제가…… 제 손으로 받아냈습니다.”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땀에 젖은 아들의 어깨를 토닥였고, 가족들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함께 깊은 안도의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텅 비어 스산했던 아침의 초가집 마당은, 어느새 새 생명을 맞이한 가족들의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졌답니다.
전통 사회의 산파와 해산 보조 역할
전통 사회에서 산파는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순산할 수 있도록 돕고 탯줄을 자르는 등 해산 전 과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주로 출산 경험이 있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 등 가족 구성원이 담당하였으나, 집안에서 구할 수 없을 때는 친척이나 마을의 다산 경험자, 단골, 무당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지역에 따라 전라남도 강진에서는 ‘삼할머니’라고 불렀으며, 충남 공주에서는 해산을 돕는 일을 ‘해막간’이라 하여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시누이, 올케, 남편 등이 참여하고 산모를 손 없는 방향으로 눕히는 등 가족 중심의 출산 지원 형태를 보였습니다.
해산 도구와 순산 기원 풍속
해산 과정에서는 산실에 짚을 깔고 물을 끓여 준비를 갖추었으며, 분만이 더디면 집안의 모든 문, 궤의 문, 솥뚜껑, 물항아리 뚜껑을 열어놓아 막힘없는 순산을 기원했습니다. 제주 북촌마을의 전승처럼 도울 사람이 없을 때는 남편이 직접 물을 끓이고 제주 전통 감옷인 ‘갈중이’로 아기를 받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난산일 경우 거창 등지에서는 삼신께 빌었고, 진주에서는 점치는 이가 제왕판 삼신상을 차려놓고 비손했으며, 제주도에서는 ‘아기할망’, ‘삼승할망’ 등으로 불리는 어른들이 배를 쓸어주거나 무속의례를 행하여 난산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산파의 금기와 사례 풍속
산파는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엄격한 금기를 지켰습니다. 자기 딸이 출산하더라도 직접 가지 않으며, 한 달에 아이를 두 번 받지 않고, 전문적으로 아이만 받는 경우 같은 달에 짝수로 아이를 받지 않는 등의 규칙이 있었습니다. 이는 한 달에 아이를 여러 번 받으면 삼신이 다투거나 아이에게 해를 잔뜩 끼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경건함과 조심성입니다. 한편 산파의 노고에 감사하며 이웃에서는 버선 한 켤레, 마른미역, 건어물, 쌀 등을 집안 형편에 맞추어 답례했고, 제주 동남부 등에서는 밥, 생선, 국 등의 음식으로 사례했습니다.
현대적 의료 제도로의 전환과 출산 환경
전통적인 민간 산파의 역할은 근현대 법제화 과정을 거치며 현대적 의료 제도의 전문 직업인으로 편입되었습니다. 1914년 제정된 「산파규칙」에서 전통적 산모 구완자를 ‘산파’라 불렀고, 이후 1952년 의료법 개정으로 ‘조산원’, 1987년 개정으로 ‘조산사’ 명칭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의료 발달과 보편화로 집에서 아이를 낳기보다는 조산원이나 산부인과 병원을 찾아가며, 남자 의사의 도움으로 출산하는 일이 낯선 풍경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제주 북촌마을의 남성 제보자가 제사로 가족이 부재한 사이 직접 물을 끓이고 갈중이로 아기를 받았던 실제 전승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다만 돌이와 순임의 구체적인 부부간 대화, 이웃 막례 할머니의 호통과 동선, 귀가한 가족들의 세부 반응 등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창작된 요소입니다. 해산이 더딜 때 문이나 솥뚜껑을 열고 짚을 까는 풍습은 전통 사회의 민속적 대처 방식을 담고 있으나, 특정 사건의 공식적 기원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