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관아에 부임한 열세 살 어린 수령 이원익. 아전들의 콧대를 꺾은 엽전 일화와 청백리 오리 이원익의 지혜로운 인물 전설을 만나보세요.
어린 원님을 맞이한 차가운 눈길
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불던 날 아침이었지요. 충청도 서산 관아 앞마당에 가마 하나가 멈춰 섰습니다. 나이 지긋한 구실아치들이 고개를 길게 빼고 문안을 엿보는데, 정작 가마 문을 열고 내린 이는 앳된 티를 채 벗지 못한 열세 살 소년이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수령, 이원익이었지요. 태종 임금의 피를 이어받은 종친이라 하나, 이마에는 보송보송한 솜털이 남아 있었고 관복 소매는 자그마한 손등을 살짝 덮고 있었습니다. 관아의 살림을 쥐락펴락하던 수석 관속 장 서생이 뒤편의 아전들과 눈을 마주치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습니다.
“글공부나 더 해야 할 어린 도련님이 어쩌자고 여기까지 오셨누. 호통 한 번 치면 방에 틀어박혀 울기나 하겠지.”
장 서생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헛기침을 하더니, 허리를 엉거주춤 굽히며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사또, 먼 길 오시느라 고단하셨을 터이니 공청에 드시어 푹 쉬십시오. 나랏일이야 저희 늙은 것들이 알아서 처리해 올리겠습니다.”
말은 공손했으나 그 속에는 관아 일에 끼어들 생각일랑 아예 품지 말라는 쌀쌀맞은 경고가 담겨 있었지요.

장부 더미 속에 숨긴 덫
이튿날 동이 트자마자 장 서생은 누렇게 바랜 호적 장부와 세금 결산 책자를 동헌 마당까지 쿵쿵 소리 나게 날라다 놓았습니다. 어린 수령의 기를 단단히 꺾어놓을 심산이었지요.
“사또, 지난가을부터 밀린 군포와 환곡 결산이옵니다. 글귀는 익히셨을 터이니, 어느 마을의 쌀을 먼저 털어 채워야 할지 결재해 주시지요.”
복잡하게 얽힌 숫자와 빽빽한 이두 문자를 들이밀며 장 서생이 빙글거렸습니다. 나이 든 관속들도 동헌 토방 밑에 팔짱을 끼고 늘어서서 어린 원님이 당황해 얼굴을 붉히기만을 기다렸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이원익은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덤덤한 얼굴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장 서생, 이 앞쪽 장부의 흉년 감면 조항을 보았는가?”
“예? 그, 그건 지난 수령 시절의 일이라…”
“곡식을 메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백성의 사정이지. 법전에 적힌 감면 기한이 아직 닷새나 남았는데, 어찌하여 늙은 홀어미와 아이만 남은 집부터 쌀을 거두려 드는가? 자네가 나랏법을 몰라서 이리 적었는가, 아니면 내 눈을 시험하려 일부러 이리 적었는가?”
이원익의 맑고 또렷한 목소리가 동헌 마당을 울렸습니다. 어린아이의 투정 어린 말투가 아니었지요. 허를 찔린 장 서생은 얼굴이 벌게져 마른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하수구로 떨어진 놋전
정오가 가까워오자 관아 뒤뜰에서 솔솔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허드렛일을 돕는 아낙 막례가 붉은 팥을 푹 삶아 끓여낸 팥죽이었지요. 뱃속이 출출해진 이원익은 소매에서 엽전 몇 푼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달 관아에서 정식으로 받은 자신의 녹봉 중에서 덜어낸 푼돈이었지요.
“막례 어멈, 시장기가 도니 그 팥죽 한 그릇 나도 맛보세.”
이원익이 웃으며 엽전을 건네려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옷소매가 처마 기둥에 스치면서 손에 쥐고 있던 놋전 한 닢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떨어졌습니다. 짤랑거리는 맑은 소리를 내며 굴러간 엽전은, 하필이면 마당 구석 돌 틈 사이로 파인 깊고 어두운 하수구 속으로 툭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물과 흙탕물이 뒤섞여 흐르는 도랑이라 속이 까마득하게 들여다보이지 않았지요. 곁에 섰던 장 서생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내저었습니다.
“에이고, 사또. 그깟 푼돈 한 닢에 마음 쓰실 것 없습니다. 그 더러운 하수구 바닥을 뒤져 꺼내느니 그냥 버려두시지요. 고을 원님이 체면도 없이 도랑을 들여다보아서야 되겠습니까?”
관속들도 푼돈을 아까워하는 어린 수령의 꼴을 보며 은근히 혀를 찼습니다.

나랏돈의 무게와 두 배의 품삯
주변의 빈정거림에도 이원익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도랑 밑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이원익이 옷깃을 바로잡고 장 서생을 매섭게 쳐다보았습니다.
“비록 푼돈이나, 이것은 나라에서 내게 내린 녹봉일세. 백성의 피땀으로 거둔 세금에서 나온 돈이란 말일세. 내 부주의로 도랑에 빠뜨렸다고 하여 나랏돈을 이대로 버려 망실한단 말인가?”
“하지만 사또, 그 엽전 한 닢을 건지자고 사람을 부르면 품삯이 두 배는 더 들 터인데요!”
장 서생이 기가 찬다는 듯 언성을 높이자, 이원익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품에서 엽전 두 닢을 더 꺼내 내밀었습니다.
“내 사사로운 재물에서 품삯 두 배를 줄 터이니, 어서 일꾼을 부르게. 내 손으로 잃어버린 나랏돈은 내 힘으로 온전히 찾아 채워 넣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원익은 말만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낡은 갓을 벗어 기둥에 걸어두더니, 흙탕물이 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당 한편에 놓인 삽을 번쩍 쥐어 들었습니다. 어른 팔뚝만 한 삽자루를 쥐고 직접 돌멩이를 들추려는 어린 수령의 모습에, 빈정대던 관속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습니다.

소박한 팥죽 한 그릇의 훈기
“사또, 고정하십시오! 저희가 어찌 원님께 삽질을 시키겠습니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장 서생이 허겁지겁 달려들어 삽자루를 넘겨받았습니다. 뒤에서 구경만 하던 아전들도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도랑가로 뛰어들지요. 흙을 파내고 썩은 검불을 걷어낸 지 한참 만에, 진흙 속에 파묻혀 있던 엽전 한 닢이 마침내 햇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맑은 우물물에 엽전을 깨끗이 씻어 바치며, 장 서생은 두 손을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겉치레와 권위만 앞세우던 자신들과 달리, 어린 수령은 백성의 고혈이 담긴 나랏돈 한 푼의 무게를 뼛속 깊이 알고 있었던 게지요.
“저희의 생각이 참으로 얕았습니다. 소인들이 어리석어 큰 뜻을 몰라보았습니다.”
장 서생이 고개를 깊이 숙이자 이원익은 빙그레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털어주었습니다.
“고생들 하였네. 자, 이제 이 깨끗해진 돈으로 죽을 사서 다 함께 나누어 먹읍시다.”
그날 저녁, 서산 관아 평상에는 둥근 상이 차려졌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소박한 팥죽 그릇을 사이에 두고, 어린 수령과 관속들이 머리를 맞대었지요. 팽팽했던 의심과 경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신뢰가 고을의 어스름 속에 은은하게 번져 나가고 있었답니다.

조선 중기의 경세가이자 청빈한 관료, 오리 이원익
조선 중기의 문신인 오리 이원익(1547~1634)은 태종의 아들 익녕군 치의 현손이자 이억재의 아들로 왕족 출신 재상입니다. 영의정에 올라 병제와 조세 제도인 육번제 및 대동법 정비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평생을 청빈하게 살아 관료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경세가이자 개혁가, 청빈한 관료로서 매우 높은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구비 전승으로 전해지는 일화와 지인지감
이원익과 관련된 전설에는 그의 비범한 재치와 청빈함, 그리고 사람의 품성을 알아보는 지인지감 모티프가 담겨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서산 수령으로 부임하여 관속을 제압했다는 일화, 팥죽 값을 내다 녹봉 엽전이 하수구에 떨어지자 나랏돈 망실을 막기 위해 두 배 이상의 품을 들여 건져낸 일화, 갓을 새로 살 여력이 없어 구멍 뚫린 갓을 썼던 일화 등이 전해집니다. 또한 가난한 선비 허목을 손자사위로 삼아 수학시키는 등 사람을 보는 안목이 뛰어났으며, 임금이 이를 찬탄하여 관감정을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지역별 설화의 전승 양상
이원익 설화는 지역에 따라 전승 양상에 차이를 보입니다. 출생지 인근인 서울 및 경기 지역의 설화는 이원익의 청빈함과 지인지감 같은 성품 및 예지력을 주로 다루는 반면, 충청북도·충청남도·전라남도 지역에서는 관료로서의 구체적인 치적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오늘날에 이어지는 역사적 평가와 발자취
오리 이원익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청빈한 재상과 개혁가로서 오늘날까지 역사적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의 삶과 일화는 오랜 세월 구비 전승과 문헌을 통해 전해지며, 청렴결백한 공직자의 표상으로서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구비 전설의 경계
본문의 내용 중 이원익의 가계, 영의정 재임, 육번제와 대동법 실시 등의 치적은 문헌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반면 13세 서산 수령 부임 당시의 구체적인 대화, 하수구에 빠진 엽전을 건져내기 위해 벌인 세부 행동, 장 서생이나 막례 같은 가상 인물 설정 등은 전설 속 모티프를 바탕으로 극적 흥미를 위해 구성한 허구적 서사입니다. 따라서 전설 속 일화나 창작된 서사를 역사적 사실 그 자체로 혼동하여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