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눈썹과 어긋난 인연

세상 사람들의 참모습을 비춘다는 호랑이 눈썹을 얻은 도영은 아내의 본래 모습을 확인한 후 평생의 짝을 바꾸어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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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본질을 비추는 눈썹

옛이야기 속에는 겉모습 너머의 참모습을 꿰뚫어 보게 해 준다는 신비로운 보물이 가끔 등장하곤 하지요. 그 가운데서도 ‘호랑이 눈썹’은 눈에 가만히 대고 사람을 바라보면 그 사람의 전생과 본래 모습을 환히 드러내 준다는 특별한 내력을 품고 있답니다. 험한 산을 다스리는 영험한 맹수의 눈썹을 빌려 세상의 참모습을 헤아린다는 상징이지요.

사람들은 열심히 땀 흘려 살아가면서도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마음이 자꾸만 어긋날 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가슴을 치곤 합니다. 그 답답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산으로 향했던 어느 사내의 옛이야기가 바로 호랑이 눈썹과 함께 전해 내려온답니다.

산길을 오르는 사내의 모습

헛도는 쟁기질과 깊어지는 한숨

깊은 산골 마을에 도영이라는 사내가 살고 있었습니다. 도영은 결코 게으른 적이 없었지요.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거친 밭을 갈고 날이 저물도록 돌을 골라내었지만, 신기하게도 거두어들이는 곡식은 늘 모자랐습니다. 지붕을 고치면 담이 무너지고, 장에 나가 물건을 팔라 치면 어째 값만 곤두박질쳤지요.

더 괴로운 것은 아내와의 살림이었습니다. 도영이 밭에 물을 댈 생각에 들뜨면 아내는 영 딴판으로 마당 흙을 파헤치며 종종걸음을 쳤고, 조용히 마주 앉아 살림을 의논하려 해도 말끝마다 삐걱거리기 일쑤였어요. 하루는 도영이 땀을 소매로 훔치며 물었지요.

“여보, 오늘은 배수로를 손보아 장마를 대비해야 하지 않겠소?”

하지만 아내는 듣는 둥 마는 둥 모이주머니만 탈탈 털며 대꾸했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텃밭 흙더미부터 헤쳐서 벌레나 잡아야지, 큰길 공사는 나중에 해요.”

도영은 가슴이 답답해 그만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서로 나쁜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데, 두 사람의 생각과 발걸음은 마치 다른 길을 걷는 사람처럼 번번이 엇갈렸답니다.

농가에서 밭일을 하는 사내와 아내

산속으로 향한 발걸음

해를 넘겨도 살림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지칠 대로 지친 도영의 마음에는 시커먼 절망만 쌓여 갔습니다. ‘이러다가는 둘 다 굶어 죽든 속이 터져 죽든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마침내 차라리 산에 들어가 무서운 짐승에게 잡아먹히는 편이 낫겠다는 모진 결심까지 서게 되었지요.

도영은 말없이 봇짐 하나를 둘러메고 마을 뒤편의 험준한 산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바위틈을 지나 빽빽한 참나무 숲 깊숙이 이르렀을 때였답니다. 별안간 서늘한 바람이 불며 나뭇잎들이 소스라치게 흔들리더니, 바위 너머에서 집채만 한 호랑이 한 마리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황금빛 털에 굵은 줄무늬를 두른 호랑이가 낮게 으르렁거리자 땅이 울렸지요. 도영은 털썩 무릎을 꿇고 질끈 두 눈을 감으며 소리쳤습니다.

“사는 게 너무 고달파 되는 일이 없으니, 차라리 네 배나 채워 주마! 어서 날 잡아먹어라!”

호랑이 앞에 무릎 꿇은 사내

호랑이가 건넨 신비로운 눈썹

그런데 말이지요, 날카로운 발톱 대신 뜻밖에도 굵직하고 너털웃음 섞인 목소리가 도영의 귓전을 울렸습니다.

“쯧쯧, 목숨을 그리 쉽게 버리려 들다니 참으로 딱한 놈이로구나. 네가 죽을 만큼 괴로운 것은 네 탓도, 아내의 탓도 아니니라.”

도영이 살며시 눈을 뜨자 호랑이는 굵직한 앞발을 들어 제 눈가를 툭 건드렸습니다. 그러더니 빳빳한 흰 눈썹 털 하나를 뽑아 도영의 무릎 앞에 툭 떨어뜨려 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것을 네 눈앞에 가만히 대고 사람들을 살펴보거라. 그러면 그들의 전생과 본래 모습이 보일 게다. 네 괴로움의 까닭도 거기에 있을 터이니 잘 헤아려 보아라.”

도영이 떨리는 손으로 눈썹을 집어 들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호랑이는 이미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바람 소리만 맴돌고 있었습니다.

호랑이가 흰 눈썹을 떨어뜨리는 모습

눈앞에 펼쳐진 또 다른 세상

도영은 반신반의하며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이웃들이 우물가에 모여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였지요. 도영은 호랑이의 말이 떠올라 가슴을 졸이며 그 눈썹을 오른쪽 눈에 살며시 대어 보았습니다.

그 순간 도영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습니다. 멀쩡한 사람의 옷을 입고 서 있는 이웃들이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헐레벌떡 짐을 지고 가는 사내는 우직한 소의 형상이었고, 골목길에서 떵떵거리며 소리치는 노인은 날카로운 뿔을 세운 염소의 모습이었습니다. 개나 돼지, 너구리의 기운을 띤 채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요.

‘아니, 겉모습은 다들 평범한 사람인데 본성은 저토록 제각각이었단 말인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영은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눈썹으로 사람들을 보는 사내

어긋난 짝의 정체

사립문을 밀고 들어서자 마당에서 마른 나물을 다듬고 있던 아내가 홰를 치듯 고개를 돌렸습니다. 도영은 떨리는 손으로 다시 한번 호랑이 눈썹을 눈가에 대었습니다. 마루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는 도영 자신은 영락없이 온전한 사람의 모습이었지요. 그런데 아내를 바라보자 기가 막힌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아내의 머리 위로 붉은 볏이 돋아나 있고, 부리로 바닥을 콕콕 쪼며 분주하게 날개를 퍼덕이는 형상, 영락없는 암탉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도영은 멍하니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사람과 닭이 한 지붕 아래 살며 한마음으로 밭을 갈려 했으니,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을 수밖에……”

도영은 먼 산을 보며 큰길을 내려다보는 사람의 뜻을 품었고, 아내는 땅바닥의 낟알과 흙만을 헤집는 닭의 성정을 품고 있었으니 사사건건 뜻이 맞지 않고 부딪힌 까닭이 마침내 선명해진 것이었지요.

암탉의 형상을 한 아내를 바라보는 사내

뜻밖의 손님과 기이한 발견

그날 오후,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사립문 밖에서 낯선 인기척이 났습니다. 길을 가던 어느 부부가 날이 저물어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해 온 것이었지요.

도영은 방으로 그들을 들이며 따뜻한 보리차 한 대접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손님으로 온 사내의 낯빛이 몹시 어둡고 한숨이 잦았습니다.

“저희도 산골짝에서 살림을 일궈 보려 발버둥을 쳤지만, 이상하게도 하는 일마다 어그러져 길을 떠나는 중입니다.”

남자의 한숨 섞인 말에 도영은 불현듯 품속의 호랑이 눈썹을 꺼내어 눈에 대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놀라 눈을 크게 떴지요. 손님으로 온 남자는 깃을 곧추세우고 목을 길게 빼는 수탉의 모습이었고, 곁에 앉은 그의 아내는 도영처럼 온전하고 맑은 사람의 형상을 띠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럴 수가, 저 집 또한 수탉과 사람이 짝을 맺어 살아가느라 온갖 일이 헛돌고 있었구나!’

수탉의 형상을 한 손님과 아내를 보는 사내

네 사람의 솔직한 결단

도영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조심스럽게 호랑이 눈썹을 손님들에게 건넸습니다. 그러고는 산에서 겪었던 기이한 일과 방금 눈썹 너머로 본 본모습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지요. 호랑이 눈썹을 차례로 건네받아 눈에 대어 본 세 사람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나쁜 마음을 먹어서 불행했던 것이 아니었군요. 본래의 성정이 닿지 않아 헛걸음만 친 것이었습니다.”

도영의 아내가 먼저 고개를 끄덕이자, 손님 사내 역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맞습니다. 억지로 어긋난 멍에를 쥐고 살아가는 것보다, 서로 통하는 짝을 만나 새로 시작하는 것이 하늘의 뜻에 부합하지 않겠습니까?”

네 사람은 밤이 깊도록 무릎을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의논했습니다. 원망이나 미움은 없었지요. 오직 서로가 온전히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마침내 두 부부는 짝을 맞바꾸어 각자의 삶을 다시 일구기로 결단을 내렸답니다.

막힌 매듭이 풀리다

짝을 바꾼 뒤의 삶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사람의 본성을 지닌 도영과 새 아내는 눈빛만 마주쳐도 서로의 생각을 헤아릴 수 있었지요. 도영이 씨앗을 뿌릴 때를 이야기하면 아내는 곳간의 씀씀이를 맞추어 챙겼고, 둘이 함께 머리를 맞대자 밭고랑마다 윤기 흐르는 이삭이 넘쳐났습니다. 농사뿐 아니라 장사를 시작해도 손길이 닿는 족족 번창하여 도영의 집은 몇 해 지나지 않아 고을에서 손꼽히는 큰 부자가 되었답니다.

마음이 통하고 뜻이 맞닿으니 험하던 살림살이가 비단천처럼 부드럽게 풀려나간 것이었지요. 도영은 가끔 마당에 서서, 호랑이에게 목숨을 내놓으려던 어리석었던 옛날을 떠올리며 빙그레 미소를 짓곤 했습니다.

웃음으로 피어난 두 집안의 복

그렇다면 닭의 성정을 품고 떠났던 전 아내의 부부는 어찌 되었을까요? 장날 큰 장터로 곡식을 싣고 나갔던 도영은 뜻밖에도 비단옷을 곱게 차려입고 풍채가 좋아진 그들 부부와 마주쳤습니다.

“아이고, 이게 뉘십니까!”

두 사람은 도영을 보자 반갑게 손을 맞잡았지요. 수탉과 암탉의 본성을 지닌 그들 또한 서로의 습성을 꼭 맞추어 가금 살림을 크게 일구고 곡식을 모아 큰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잘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호랑이 눈썹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엉뚱한 멍에를 끌며 가슴만 쥐어뜯고 있었을 테지요!”

서로를 향해 원망 한 톨 없이 나누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장터의 하늘을 맑게 울렸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본성이 서로 어우러지는 짝을 만나야 비로소 참된 복이 찾아온다는 이치를 남기며, 신비한 호랑이 눈썹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다정하고 따스한 옛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답니다.

행복하게 웃는 부부들의 모습

호랑이 눈썹은 눈에 대고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전생 모습이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설화적 화소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민담입니다. 이는 맹수 중의 왕인 호랑이를 통해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본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민간의 윤회론과 인연설을 잘 보여 줍니다.

이 설화의 대표적인 줄거리는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산에 오른 남자가 호랑이로부터 눈썹(혹은 안경)을 얻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눈썹을 통해 사람들의 본모습을 본 남자는 자신과 아내의 성정이 엇갈려 있음을 깨닫고, 뜻이 통하는 다른 부부와 짝을 바꾸어 마침내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서로 본성이 통하는 사람끼리 짝을 이루어야 삶이 원만해진다는 인식을 전합니다.

변이 각편에 따라서는 호랑이가 눈썹 대신 안경을 건네기도 하며, 눈썹에 비친 남녀의 본모습으로 소, 염소, 개, 돼지, 너구리, 암탉, 수탉 등 다양한 동물 형상이 등장하여 각기 다른 인간 군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또한 《구렁덩덩신선비》 민담의 헌각시와 새 각시 시합 과정에서도 호랑이 눈썹이 탐색 화소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호랑이 눈썹’ 설화는 단순한 옛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문학치료 연구 분야에서 성격 차이로 인한 부부간 갈등을 해결하는 유용한 도구로 응용되고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설화 속 부부의 짝 바꾸기 과정이 관계의 모순을 직시하고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유력한 문제 해결 방법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평가합니다.

문학치료 책과 노트가 놓인 책상

본문의 전승 사실은 문헌과 설화 자료에 근거하고 있으나, 등장인물의 구체적인 이름이나 세밀한 대사, 구체적인 밭일의 묘사 등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야기적 재미를 더해 구성한 허구적 장치입니다. 따라서 이야기 속 대화나 감정 묘사 등을 역사적 사실이나 실제 민속으로 오인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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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