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태칠기와 목태칠기 소동: 전통 칠기의 역사와 종류

나무 그릇인 줄 알고 종이 물병에 옻칠을 쏟았던 견습공 돌이의 소동을 통해, 청동기 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 칠기의 역사와 다양한 재료별 종류를 알아봅니다.

코테일 이야기책 듣기

천천히, 이야기의 호흡을 따라 들어보세요.

어긋난 심부름과 분주한 아침

조선 시대의 어느 전통 칠기 공방 안은 이른 아침부터 매캐하면서도 은은한 옻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상류층에서 쓸 귀한 칠기를 맞추느라 공방 식구들의 손길이 쉴 틈 없이 움직였지요. 나이 지긋한 오 장인은 옻칠 통을 살피며 문간에 선 견습공 돌이를 향해 턱짓을 했습니다.

“돌이야, 안쪽에 둔 ‘태’를 얼른 가져와 결을 고르고 칠을 올릴 채비를 하거라.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 밑작업을 끝내야 한다.”

“예, 장인 어르신! 단단하게 매만져서 옻칠을 듬뿍 올리겠습니다!”

돌이가 씩씩하게 대답하고 안채 구석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장인이 말한 것은 나무로 틀을 짠 ‘목태’였건만, 마음이 앞선 돌이의 눈에 먼저 띈 것은 한지를 꼬아 단단하게 엮어 둔 ‘지태’ 물병이었답니다.

공방에서 한지로 엮은 지태 물병을 바라보는 견습공 돌이

종이 병에 들이댄 사포와 옻칠 주걱

작업대에 마주 앉은 돌이는 팔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나무 그릇을 다듬듯 거친 칼을 꺼내 들고는, 단단하게 꼬아 만든 종이 기형의 표면을 사정없이 긁어내기 시작했지요.

“이상하네. 나무라기엔 너무 가볍고 결이 질긴데? 장인 어르신께서 바짝 마른 괴목이라 하셨던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돌이는 붓을 들어 끈적끈적한 옻칠을 듬뿍 떠 올렸습니다. 종이로 엮은 표면에 시커먼 칠이 닿자마자, 한지가 옻을 스펀지처럼 쭉쭉 빨아들였지요. 당황한 돌이는 칠을 더 두껍게 펴 바르려다 그만 손을 미끄러뜨리고 말았습니다. 옻칠 그릇이 덜컹거리며 작업대 모서리를 쳤고, 검은 옻 방울이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종이 물병에 시커먼 옻칠을 붓는 견습공 돌이의 손길

발칵 뒤집힌 공방 바닥

“아이쿠, 칠이 쏟아진다!”

돌이가 기겁하며 몸을 던졌지만, 이미 시커먼 옻물이 작업대 아래 짚자리 위로 주르륵 흘러내린 뒤였습니다. 서둘러 수건을 집어 들려다 발이 엉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옆에 놓인 나무 주걱과 솔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흩어졌지요.

“돌이야, 안에서 무슨 난리가 난 게냐!”

문밖에서 오 장인의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돌이는 새파랗게 질려 시커멓게 얼룩진 종이 물병을 품에 숨기려 허둥댔습니다. 방안은 그야말로 칠과 도구가 어지러이 널브러진 난장판이었답니다.

옻칠이 쏟아져 당황한 표정의 견습공 돌이

장인의 멈칫한 걸음과 발견

드르륵, 문이 열리고 오 장인이 방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어질러진 바닥과 옻칠 범벅이 된 채 떨고 있는 돌이를 본 장인의 눈썹이 꿈틀했습니다.

“장인 어르신, 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나무를 매만지려다 그만……”

돌이가 덜덜 떨며 내민 것은 나무 그릇이 아니라, 옻칠을 잔뜩 머금어 시커멓게 젖어 든 종이 기물이었습니다. 장인은 매서운 호통을 치는 대신, 한 걸음 다가와 돌이의 손에 들린 기물을 낚아채듯 받아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칠이 먹어 들어간 자리를 가만히 손가락으로 꾹 눌러보았지요.

“이 녀석아, 이건 나무로 짠 목태가 아니라 종이로 엮은 지태가 아니더냐.”

돌이가 건넨 기물을 받아드는 백발의 장인

나무와 종이가 품은 옻칠의 이치

금방이라도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고 눈을 질끈 감았던 돌이는 장인의 조용한 목소리에 살그머니 실눈을 떴습니다. 오 장인은 기형을 햇빛 쪽에 비추어 보며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나무에 베를 바르고 칠을 올리는 목태는 흠결을 감추고 뒤틀림을 막기 위함이지요. 하지만 종이를 꼬아 만든 지태는 본래 물 한 방울 배지 않게 옻을 깊이 먹여야 가마요강이나 물병처럼 쇠붙이 못지않게 단단해지는 법이란다.”

장인은 옻이 종이 올 사이로 촘촘히 스며들어 단단하게 굳기 시작한 표면을 툭툭 두드렸습니다.

“네가 덤벙대며 칠을 들이붓는 통에 외려 뼈대 속까지 옻이 아주 깊숙하게 먹어 들어갔구나.”

단단하게 굳은 옻칠 표면을 두드리는 장인

흠결을 기회로 바꾸는 손길

“어르신, 그럼 이 기물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돌이가 눈을 크게 뜨고 묻자, 오 장인이 헛기침을 한 번 내뱉으며 작업대 앞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버리긴 왜 버려. 네 녀석이 칼로 파먹은 자리는 고운 삼베 조각을 덧대어 결을 보정하면 된다. 나무 기물 틈을 직물로 싸매듯, 이 종이 병도 그리 감싸 옻을 고르게 펴 바르면 그 어떤 칠기보다 질기고 단단해질 게다.”

“제가 삼베를 마름질해 오겠습니다! 칠솔도 깨끗이 빨아오겠습니다!”

돌이는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일념으로 공방 구석구석을 부지런히 뛰어다녔습니다. 스승과 제자는 나란히 앉아 패인 자리에 고운 천을 대고 정성스레 옻칠을 덧바르기 시작했습니다.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앉아 옻칠을 덧바르는 모습

밤을 건너 태어난 단단한 광채

등잔불 기름이 다 닳아갈 무렵까지 두 사람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옻칠이 스며들고 굳기를 기다려 다시 고르게 펴 바르기를 거듭하자, 낮 동안의 엉망진창이었던 흠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요. 종이로 엮었음에도 쇠로 쳐도 깨지지 않을 만큼 묵직하고 단단한 기형이 자리를 잡았고, 그 위로 깊고 은은한 검은 광택이 감돌았습니다.

“보아라. 종이의 질긴 숨과 옻의 방습이 만나니 물 한 방울 새지 않을 단단한 물병이 되었지 않느냐.”

오 장인이 흐뭇하게 턱수염을 쓸어내리자, 칠투성이가 된 돌이의 얼굴에도 안도의 미소가 번졌습니다.

은은한 검은 광택이 감도는 완성된 검은색 칠기 물병

식어가는 찻잔과 번지는 웃음

어느덧 동이 터 오르고 맑은 아침 볕이 공방 창살을 비추었습니다. 간밤의 소동으로 엉망이 되었던 도구들도 제자리를 찾았고, 작업대 한가운데에는 말끔하게 완성된 칠기 물병이 단정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오 장인은 투박한 사발 두 개에 따뜻한 차를 따라 하나를 돌이 앞으로 툭 밀어놓았습니다.

“자, 밤새 기운 뺐으니 목이나 축이거라. 다음에도 나무와 종이를 헷갈리면 그땐 옻칠 통 청소를 도맡길 테니 그리 알아라.”

“헤헤, 어르신. 다음엔 눈을 아주 크게 뜨고 가져오겠습니다!”

돌이가 찻사발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배시시 웃자, 엄하던 장인의 입가에도 참지 못한 웃음이 비쳐 나왔습니다. 구수한 차향과 함께 공방 안에는 간밤의 긴장을 털어내는 유쾌하고 다정한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답니다.

칠기의 정의와 우수성

옻칠은 전통 도료를 대표하며 방습과 내구성에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칠기 제작이 시작된 것은 청동기 시대로 나타나며, 낙랑을 중심으로 선진적인 옻칠기술이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대별 역사적 전개 과정

한반도의 칠기 문화는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시대별로 발전 양상을 거쳐왔습니다. 초기 철기시대에는 아산 남성리, 광주 신창동, 창원 다호리 등의 유적지에서 칠기가 확인되며, 평양 석암리 및 남정리 고분군 등에서도 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경산 임당동, 공주 무령왕릉, 부여 능산리 사지, 경주 고분군 등에서 출토되며 주칠(진사)과 황칠(석황)을 사용하는 등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경주 동궁과 월지 출토품에서 나전칠기의 시작을 알리는 평탈기법 칠기가 등장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나전칠기가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목심저피칠기의 비율이 증가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나전칠기의 발달과 함께 지태·피태·금태칠기 등 다양한 재료가 활용되었습니다. 다만 주칠과 흑칠은 왕실을 비롯한 상류층에 국한되었습니다.

재료에 따른 칠기의 종류

칠기의 종류는 옻칠로 도장된 기물의 재료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뉩니다.

  • 목태칠기 (목심칠기/목심저피칠기): 나무에 옻칠을 한 기물로, 직물로 기형을 싸서 흠결을 보완하고 나무의 성질을 보정합니다.
  • 남태칠기: 대나무로 만든 칠기에 옻칠을 한 것입니다.
  • 도태칠기: 토기 위에 옻칠을 한 것으로 방수 기능을 합니다.
  • 지태칠기: 종이에 옻칠을 한 것으로, 조선시대 지승공예품(가마요강, 물병, 술병 등)에 옻칠을 하여 단단한 기형을 완성했습니다.
  • 피태칠기: 가죽에 옻칠을 한 것으로, 공주 공산성 출토 갑옷미늘 등이 제작되었습니다.
  • 금태칠기: 금속의 기물에 옻칠을 한 것으로, 평양 석암리 출토품 등이 있습니다.
  • 협저칠기: 칠기의 한 종류로 분류됩니다.

오늘날 칠기는 현대공예의 한 분야를 이루고 있으며,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 양상을 거듭하며 전승·개발되고 있습니다.

현대 공방에서 전통 칠기 작업을 하는 장인의 모습

본문에 등장하는 견습공 돌이와 오 장인의 공방 소동 및 구체적인 일화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창작된 허구이며, 실제 역사적 사건이나 특정 인물의 일화가 아닙니다. 칠기의 역사적 전개, 재료별 분류, 옻칠의 방습 및 내구성 등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문헌 기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관련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낙랑시대 평양 석암리 출토 금태칠기 소장처

🎨 직접 색칠해 보기

이 이야기의 색칠공부 펼쳐서 시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