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토산본향당의 당신화, 일뤠또본풀이 이야기

제주도 토산본향당에서 전승되는 '일뤠또본풀이'는 남녀 신의 혼인과 식성 차이로 인한 별거, 그리고 바람웃또에서 일뤳당신앙으로 이어진 신화적 변천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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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산본향당에 깃든 오랜 이야기

제주도 서귀포의 고즈넉한 마을, 토산본향당에는 바람과 바다를 건너온 신들의 오랜 내력이 포근하게 스며 있습니다. 본래 이곳에서는 바람웃또라는 본향신을 모시며 삶의 평안을 빌었지만, 세월이 흘러 일뤳당신앙이 깊게 뿌리내리면서 일뤠또가 더욱 널리 자리 잡게 되었지요.

남녀 신이 만나 가정을 꾸렸으나 서로 다른 식성과 성격 때문에 멀어지고, 끝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게 되었다는 이 이야기는 제주 신화의 신비로운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답니다. 과연 그 옛날, 이들에게는 어떤 얄궂고도 따뜻한 사연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요?

제주도 서귀포 토산본향당의 고즈넉한 마을 풍경과 신들의 내력이 깃든 풍경 수채화 일러스트

무쇠 상자에 실려 온 손님

아주 먼 옛날, 남다른 힘을 지닌 남신 바람웃또는 아버지가 씌운 억울한 죄 때문에 커다란 무쇠 상자에 담겨 깊은 바다로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쿵쾅거리는 파도를 타고 끝없이 떠돌던 무쇠 상자가 마침내 닿은 곳은 머나먼 요왕황제국이었지요.

그곳의 말잣딸아기는 바닷가에 밀려온 묵직한 상자를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며 천천히 뚜껑을 열었습니다.

“아니, 이 깊은 바다를 어떻게 홀로 상자에 담겨 건너오셨습니까?”

말잣딸아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상자에서 걸어 나온 바람웃또는 옷깃을 툭툭 털며 씩씩하게 답했습니다.

“죄를 뒤집어쓰고 물결에 떠밀려 왔으나, 당당히 살아남았소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비범함에 이끌려 혼인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평온하던 궁궐에 뜻밖의 소동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웃또의 먹성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마어마했던 것이지요. 해가 지고 뜨는 동안 곳간의 쌀과 곡식이 눈에 띄게 바닥을 드러내자, 요왕황제국의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온 나라의 곳간이 죄다 비어버리겠어!”

결국 감당하기 힘든 먹성을 견디다 못한 요왕황제국에서는 바람웃또를 다시 무쇠 상자에 태워 바다 너머 제주도로 쫓아내고 말았답니다.

바닷가에 밀려온 묵직한 상자를 열며 흠칫 놀라는 말잣딸아기의 모습 수채화 일러스트

콩깍지 바람과 신비한 부채

바람웃또를 따라 제주에 당도한 말잣딸아기는 어느 마을 어귀에서 꽤나 소란스러운 광경을 마주했습니다. 바람웃또의 어머니가 거세게 부는 바람을 이용해 콩에서 콩깍지를 날려 보내는 타작을 하고 있었는데, 날카로운 바람길 탓인지 콩깍지 하나가 그만 눈으로 훅 날아들어 몹시 심한 눈병이 나고 만 것이지요.

“아이고, 눈이 따갑고 쓰려 앞을 볼 수가 없구나!”

어머니가 두 눈을 감싸 쥐며 비틀거리자, 말잣딸아기가 깜짝 놀라며 얼른 다가와 소매 속에서 작은 부채를 꺼내 들었습니다.

“어머님, 잠시만 가만히 계셔 보셔요. 제가 살피겠습니다.”

말잣딸아기가 부채를 사뿐히 쥐고 세 번 살랑거리며 주문을 외우자, 시원하고 맑은 기운이 눈가를 감싸며 거짓말처럼 따가운 티끌이 빠져나왔습니다. 퉁퉁 부었던 눈이 말끔하게 나은 어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며느리의 두 손을 꼭 쥐었습니다.

“참으로 용하고 마음씨 고운 며느리로구나!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내가 가진 땅과 물을 섭섭지 않게 나누어 주마.”

부채를 살랑거리며 시원한 기운으로 눈가의 티끌을 낫게 하는 말잣딸아기의 모습 수채화 일러스트

발자국 물과 얄궂은 오해

그런데 집안에 전해지는 몫을 나눈다는 소식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큰부인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가만히 뒤를 밟았습니다. 시어머니가 새로 온 작은부인에게 물과 땅을 얼마나 떼어주는지 눈여겨보려 나선 길이었지요. 한참을 바삐 걷다 보니 볕은 뜨겁고 목구멍이 타들어 갈 듯 지독한 갈증이 찾아왔습니다.

주변을 허겁지겁 두리번거리던 큰부인의 눈에 진흙길에 깊게 파인 웅덩이가 들어왔습니다. 돼지가 지나가며 남긴 큼직한 발자국에 빗물이 조그맣게 고여 있었지요.

“에라, 목이 타 죽을 지경인데 체면을 가릴 때가 아니로구나.”

큰부인은 털썩 주저앉아 그 물을 급하게 꿀컥 들이켰습니다. 그런데 그만 물속에 섞여 있던 빳빳한 돼지털 하나가 콧구멍을 콕 찌르며 들러붙고 말았습니다. 털을 떼어내려 코를 문지르다 불에 살짝 그슬려 냄새를 맡아보니, 그 구수한 돼지 누린내가 옷깃과 손끝에 진하게 배어버렸지요.

때마침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던 바람웃또가 묘한 냄새를 맡고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소리쳤습니다.

“아니, 몸에서 왜 이런 부정한 고기 누린내가 진동을 하는 것이오? 도대체 어디서 부정을 묻혀 온 게요!”

“영감, 그게 아니옵니다! 목이 너무 말라 발자국 물을 마시다 털이 묻었을 뿐입니다.”

큰부인이 손을 내저으며 다급히 변명했으나, 바람웃또는 얼굴을 붉히며 홱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듣기 싫소! 그런 부정한 몸으로는 우리 집안에 머물 수 없으니, 당장 저 먼 마라도로 떠나시오!”

그렇게 큰부인은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먼 바다 끝 마라도로 귀양을 떠나게 되었답니다.

흙길에 주저앉아 돼지우리 웅덩이의 물을 급하게 마시는 큰부인의 모습 수채화 일러스트

마라도의 눈물과 참된 보살핌

남편의 모진 처사에 가슴이 미어졌던 작은부인 말잣딸아기는 가만히 침묵할 수가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서먹했어도 한집안의 식구였던 큰부인이 홀로 외딴섬에 버려졌다는 사실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이지요. 작은부인은 수소문 끝에 작은 배를 타고 거친 물결을 헤치며 마라도로 향했습니다.

섬 바닷가에 닿았을 때, 파도 소리 사이로 가녀린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놀라 달려가 보니 큰부인은 그 거친 섬에서 홀로 일곱 아기를 낳아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핼쑥해진 얼굴로 고둥을 주워 먹던 큰부인은 작은부인을 보자 주저앉아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여기까지 어쩐 일이오…… 나는 이곳에서 고둥이나 주워 먹으며 버틸 테니, 부디 이 가엾은 아이들만이라도 데려가 주오.”

작은부인은 젖은 손을 잡아 일으키며 깊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형님, 원망은 잠시 거두시고 아이들은 제가 정성껏 돌보겠습니다. 모진 고생을 참아내셨으니 이제 마음 놓으셔요.”

작은부인은 일곱 아기를 포대에 조심스레 감싸 안고 토산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집에 이르러 아이들을 내려놓고 하나씩 세어보니, 그만 하나가 모자란 여섯뿐인 게 아니겠어요?

“아이고, 거친 풀숲에 하나를 두고 왔구나!”

작은부인은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도록 되돌아 달려갔습니다. 가시덤불과 띠풀에 쓸려 눈을 다치고 온몸에 붉은 허물이 돋은 채 홀로 울고 있는 마지막 아기를 발견한 작은부인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얼른 아기를 품에 안고 따뜻한 부채 주술로 상처를 어루만지자, 짓무른 피부와 상한 눈이 눈 녹듯 말끔히 아물었습니다.

온갖 오해와 갈등으로 흩어졌던 인연이었지만, 작은부인은 남편의 무심함을 탓하는 대신 아픈 아이들을 품에 안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토산에 온전히 자리를 잡아, 어린 생명들의 아픔을 낫게 하고 허물을 씻어주는 자애로운 일뤠당신으로 사람들의 곁에 든든히 남게 되었답니다.

품에 안은 아기를 따뜻한 부채 주술로 어루만져 상처를 낫게 하는 말잣딸아기의 모습 수채화 일러스트

일뤠또본풀이는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의 토산본향당에서 전승되어 온 대표적인 당신화(堂神話)입니다. 이 본풀이는 남녀 신의 혼인과 식성 차이로 인한 별거를 기본 줄거리로 삼고 있으며, 제주 지역의 대표적인 본향신 신앙 계통인 송당계 당신앙과 본풀이가 확산된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토산본향당에서는 원래 ‘바람웃또’라는 본향신을 중심으로 한 당신앙이 전승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일뤳당신앙이 부상함에 따라 본래의 본향신이었던 바람웃또는 점차 잊히고, 대신 일뤠또가 더욱 부각되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승 주체와 신앙의 중심축이 이동한 양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뤠또본풀이’는 전승되는 판본에 따라 세부 내용과 양상에 차이가 나타납니다. 대표적으로 신명옥본과 안사인본이 전해집니다. 신명옥본은 전후 맥락과 신직 분담 및 좌정이 다소 불분명한 반면, 바람웃또와 요왕황제국 말잣딸아기의 내력이 비교적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이에 비해 안사인본은 상대적으로 정연한 서사 맥락을 갖추고 있으며, 작은부인으로 ‘오백장군 말잣딸아기’가 등장하는 등의 차이를 보입니다. 다만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전승 과정에서 혼란이 존재하며, 온전한 맥락을 갖춘 자료를 찾기 어렵다는 특징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일뤠또본풀이’와 관련된 오늘날의 전승 양상에 대해, 역사적 사실이나 현대적 변용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나 상시적 전승 활동의 근거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제주도 토산본향당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온 신화적 배경과 당본풀이의 한 갈래로서, 제주 지역 민속신앙과 당신앙의 흐름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주도 돌담과 고목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농촌 풍경 다큐멘터리 사진

앞서 소개된 이야기 속 세부 묘사—무쇠 상자 안팎에서의 대화, 시어머니의 콩타작과 눈병을 고치는 부채 주술, 돼지 발자국 물을 마시게 된 과정과 콧구멍의 털을 떼어내려던 모습, 마라도 바닷가에서의 대화 등은 대중적 이해를 돕기 위해 설화의 뼈대 위에 덧붙여진 창작(허구) 영역입니다. 문헌에 기록된 설화의 전승 내용과 토산본향당에서의 당신화 전승 사실 외의 마법적·주술적 효능이나 인물 간의 심리 묘사 등은 실제 문화적 사실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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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산본향당

제주도 토산본향당에서 당신화가 전승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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