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이월 초하룻날, 매서운 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영등할아버지를 맞이하는 사라봉 칠머리당의 풍경. 도윤이와 할아버지가 함께 빚어내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의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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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영등달, 거센 바람과 함께 찾아온 손님
제주도에서는 음력 이월을 ‘영등달’이라고 부른답니다. 이즈음이 되면 바다 건너에서 영등할아버지가 찾아와 섬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이월 보름날이 되면 다시 먼 길을 떠난다고 전해지지요. 옛 문헌인 『동국여지승람』과 『해상일사』에도 이월 초하루에 신을 맞이했다가 보름에 배를 바다에 띄워 보내는 풍속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새벽부터 문풍지가 덜컥거리며 거친 휘파람 소리를 냈습니다. 이불깃을 바짝 끌어당기던 도윤이는 마당에서 들려오는 빗자루 소리에 눈을 떴지요. 짚신을 꿰어 차고 문을 열자, 차가운 갯바람이 볼을 매섭게 할퀴고 지나갔습니다. 할아버지는 마당 한쪽에 굵은 댓가지들을 가지런히 모아두고 계셨지요.
“할아버지, 바람이 왜 이렇게 사납게 불어요? 문이 다 부서질 것 같아요.”
도윤이가 어깨를 웅크린 채 투덜거리자, 할아버지는 손에 쥔 빗자루를 툭툭 털어내며 엷은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영등할아버지가 제주 땅을 밟으신 게지. 오늘은 칠머리당에 올라 손님 맞을 채비를 해야 한단다. 어서 겉옷을 단단히 여미고 대나무 나르는 걸 좀 거들어라.”

사라봉 칠머리당으로 향하는 길
도윤이는 할아버지를 따라 사라봉 기슭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칠머리당은 원래 건입동 마을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산지항이 생기면서 주변이 어수선해져 이곳 사라봉 쪽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답니다. 오르막길을 오를수록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바람이 옷자락을 사정없이 펄럭였지요.
당에 도착하자마자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당 안팎을 쓸고 닦으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제주의 여러 당굿 중에서도 칠머리당영등굿은 마을을 지켜주는 토박이신과 잠시 들른 떠돌이신이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중요한 마을굿이었지요.
“할아버지, 우리 마을 신도 계신데 왜 저 멀리서 온 떠돌이신까지 이렇게 정성껏 모셔야 해요? 바람만 매섭게 몰고 오는데요.”
도윤이가 숨을 몰아쉬며 묻자, 할아버지는 댓가지 하나를 흙바닥에 단단히 박아 넣고는 이마의 땀을 훔치셨습니다.
“먼 길을 돌아 우리 바다를 찾아온 손님이 아니냐. 바다를 터전 삼아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 손님이 넉넉한 복을 두고 가셔야 한 해 농사도, 바다 물질도 편안한 법이란다.”

거센 바닷바람과 흔들리는 배방선
하지만 바람은 조금도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사 터에 둘러칠 열두 개의 나무 대를 묶어 세우는 일조차 여간 버거운 게 아니었지요. 땅에 꽂아 둔 댓가지가 휙 휘어지며 도윤이의 손을 맵게 튕겨냈습니다.
“앗!”
“다치진 않았느냐? 바람이 세니 나뭇가지를 잡을 때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을 감아쥐어야 한다.”
할아버지가 급히 다가와 도윤이의 손을 살피며 매듭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한쪽에서는 송별제 때 바다로 띄워 보낼 배 형태의 배방선을 손보고 있었는데, 돛대에 단 줄이 거센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팽팽하게 엉켜버렸습니다. 손끝이 꽁꽁 얼어붙고 끈이 자꾸만 헛돌자, 도윤이는 그만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지요.
“보이지도 않는 신을 배웅하겠다고 이 고생을 해야 하나요? 바람 때문에 배방선도 다 부서지겠어요.”
볼멘소리를 내는 도윤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할아버지는 조용히 엉킨 노끈을 건네받아 무릎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영등대왕이 남긴 깊은 뜻
할아버지는 바람을 등지고 앉아 엉킨 노끈을 천천히 풀며 입을 열었습니다.
“한림 한수리 쪽에는 ‘영등대왕 본풀이’라는 옛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단다. 까마득한 옛날, 황영등이 용왕국에 살고 있었는데 거친 풍랑을 만난 우리 어부들이 외눈배기 나라로 떠밀려가 목숨을 잃을 뻔했지.”
도윤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할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때 황영등이 왕석 위에 앉아 자신의 넓은 치맛자락 속에 배와 어부들을 숨겨 주었단다. 외눈배기가 찾아와 어부들을 보았느냐고 묻자, 영등은 자기도 그들을 잡으려고 기다리는 중이라며 능청스레 어부들을 지켜주었지. 그리고 어부들을 떠나보내며 관음보살을 쉬지 않고 외우며 가라고 신신당부했단다.”
“어부들은 무사히 돌아왔나요?”
도윤이가 조심스럽게 묻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중간에 외우기를 멈춰 다시 끌려갈 뻔도 했지만, 영등이 끝끝내 타이르고 도와준 덕에 무사히 한수리로 돌아왔지. 영등은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 당부했고, 어부들을 살려준 대가로 모진 화를 입었단다. 머리는 소섬으로, 사지는 한수리로, 몸통은 성산으로 올랐다고 하지. 바다 사람들은 그 고마움과 넋을 기리기 위해 제를 올리기 시작한 게야.”
도윤이는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다시 귀담아들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그저 매섭게만 느껴졌던 바람이, 성난 바다에서 목숨을 건져주려던 신의 숨결처럼 묵직하게 다가왔지요.

도윤이의 손으로 묶은 돛대
“그렇다면 할아버지, 이 배방선은 그 어부들을 구해주었던 배처럼 무사히 띄워 보내야겠네요.”
도윤이는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다시 엉킨 매듭 앞으로 다가앉았습니다. 투정을 부리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었지요. 찬 바람에 손가락이 굳어 마디마디가 붉어졌지만, 도윤이는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대로 줄을 두 번 감아 단단하게 옭아맸습니다.
“허허, 그렇지. 그렇게 단단히 묶어야 높은 파도에도 배방선이 쉬이 뒤집히지 않는 법이다. 네 손끝이 제법 야무지구나.”
할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으며 도윤이의 어깨를 툭 쳤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힘을 모아 말머리 형상의 나무 등걸을 정돈하고, 배방선의 작은 돛대가 꼿꼿이 설 수 있도록 지지대를 단단히 고정했지요. 차갑게만 몰아치던 바닷바람 속에서도 두 사람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보름날의 송별제와 바다로 띄운 정성
어느덧 영등달의 보름날이 밝았습니다. 칠머리당 안에는 마을 사람들이 가득 모여들었고, 토박이신과 떠돌이 영등신을 위한 굿판이 엄숙하면서도 흥겹게 펼쳐졌습니다. 당을 지키는 본향당신에게 인사를 올리고, 영등할아버지와 그 권속들을 배웅하는 송별제가 무르익었지요.
의례가 막바지에 이르자, 마을 사람들이 도윤이와 할아버지가 정성스레 손질했던 배방선을 앞세우고 바닷가로 내려갔습니다. 수평선 너머로 거칠게 일렁이던 파도 앞에서도 배방선은 도윤이가 묶어둔 돛대를 당당히 세우고 있었답니다.
“자, 도윤아. 네 정성도 저 배에 함께 실려 있단다. 영등할아버지가 먼 길 편안히 가시도록 함께 손을 얹자꾸나.”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 위에 도윤이의 작은 손이 포개졌습니다. 두 사람이 바닷물결에 맞추어 배방선을 밀어내자, 작은 배는 물살을 가르며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넓은 바다로 미끄러져 나갔지요.
참 기특한 일이었답니다. 배방선이 저 멀리 점으로 보일 만큼 나아가자, 며칠 동안 마을을 세차게 흔들던 거센 바람이 부드러운 봄기운을 머금고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잔잔해진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할아버지가 도윤이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고, 도윤이는 든든해진 마음으로 할아버지의 품에 기대어 활짝 미소를 지었습니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의 성격과 풍속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세시절기에 의한 풍어기원적 성격에 가까운 제주도의 중요한 당굿입니다. 제주도에서는 음력 2월을 ‘영등달’이라고 부르며, 영등할아버지가 들어와 여러 곳을 거쳐 2월 보름날에 나간다고 여겨집니다. 칠머리당은 영등이 나가는 과정에서 송별제를 하는 당이며, 칠머리당영등굿은 주신인 토박이신과 떠돌이신의 만남 및 이별이 주된 내용인 마을굿입니다.
조선시대 문헌인 『동국여지승람』 제주목 풍속조 및 김익석의 『해상일사』 연등절 조에는 2월 삭일에 신을 맞이하고 보름에 배를 띄워 보내는 연등절(영등제) 풍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당시에는 ‘칠머리당굿’으로 불렸으나 현재는 ‘칠머리당영등굿’으로 고쳐 부르고 있습니다.
의례 도구와 지역별 전승
굿에서는 나무 대 12개, 말머리 형상의 나무 등걸(비단 장식), 돛대를 갖춘 배 형태의 배방선 등이 사용됩니다. 또한 제주 지역에는 영등신과 관련된 구전신화인 ‘영등대왕 본풀이’(제주시 한림읍 한림리)가 전해 내려오며, 황영등이 어부들을 구하고 외눈배기에 의해 신체가 분할되었다는 전승 및 이에 따른 제사 풍속이 전해집니다.
지역에 따라 수원당에서는 영등신 환영굿을 크게 해 왔으며, 소섬·성산·한수리 등에서는 영등신의 시신 분할 전승 및 각 장소별 제사(소섬 정월 그믐날 제, 2월 초하루 비꿀물, 2월 5일 성산면 영등제)가 전승됩니다. 중부와 남부지방에는 며느리나 딸을 데리고 오는 것에 따른 풍흉·가뭄·비 이야기를 담은 영등할머니 신앙이 존재합니다.
관련 장소: 칠머리당
칠머리당은 본디 건입동에 있었으나, 산지항이 들어서고 어수선해져서 사라봉 쪽으로 옮겨졌습니다.


오늘날의 전승 양상
오늘날 제주 지역에서는 신년과세굿과 더불어 2월 초부터 중순까지 제주 전 지역에서 영등굿이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습니다.

창작 허구와 사실의 경계 안내
본 콘텐츠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 굿 준비 과정에서의 일상적인 소동이나 심경 변화 등은 이해를 돕기 위해 창작된 허구입니다. 문헌에 기록된 약마희 등은 오늘날 전하지 않아 그 기원을 정확히 알기 어렵고,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와 역사적·민속적 사실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관련 장소
칠머리당
본디 건입동에 있었으나 산지항 조성 후 사라봉 쪽으로 옮겨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