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떡 다툼: 말 없는 방과 한 덩이의 떡

이웃이 보낸 밥과 떡을 나누어 먹은 후, 남은 마지막 떡 한 덩이를 두고 시작된 부부의 말 없는 싸움과 뜻밖의 사건을 담은 한국 설화입니다.

이웃집 제사 음식과 남겨진 떡

어느 조용한 마을, 오랜 세월을 함께 해로한 노부부가 살고 있었답니다. 어느 날 건넛마을 이웃집에서 큰 제사를 모시고 정성스레 장만한 음식을 부부에게 보내왔지요. 그릇을 열어 보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과 기름이 반지르르 흐르는 떡이 곱게 담겨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어요. 영감이 숟가락을 들며 할멈을 넌지시 바라보았지요.
“임자, 제삿밥이 아주 차지구려. 어서 한술 뜨구려.”
“영감도 시장하실 텐데 푹푹 드세요.”

부부는 밥 한 그릇을 사이좋게 싹 비워 냈습니다. 그런데 상 위에는 아직 손도 대지 않은 떡 한 덩이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어요. 밥으로 속은 든든해졌지만, 새하얗고 찰진 떡을 바라보는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스르르 달라졌답니다. 나누어 먹기에는 애매하고, 혼자 다 먹으면 꿀맛일 그 떡을 보며 영감도, 할멈도 속으로 군침을 꼴깍 삼켰지요.

낮은 나무상자 양쪽에 마주 앉아 가운데 놓인 하얀 떡 한 덩이를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노부부

말을 하면 지는 내기

떡을 빤히 내려다보던 영감이 헛기침을 에헴 하고는 슬그머니 말을 꺼냈습니다.
“이 떡을 반으로 쪼개자니 모양이 영 사납고, 한 사람이 온전히 먹어야 제맛이 날 것 같은데 말이오.”
할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받아쳤지요.
“그럼 영감이 양보하시게요?”
“허허, 내가 왜 양보를 한단 말이오? 그러지 말고 우리 공평하게 내기를 합시다.”
“내기라니요? 무슨 내기요?”

영감은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눈을 반짝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둘 중 누구든 먼저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사람이 지는 거요. 끝까지 입을 꾹 다물고 말을 참는 사람이 저 떡을 몽땅 차지하는 것이지.”
할멈은 영감의 속셈을 뻔히 알면서도 입술을 앙다물었습니다.
“좋아요. 내기라면 내 결코 질 까닭이 없지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괴괴해졌습니다. 두 사람은 무릎을 꿇고 앉아 떡을 가운데 두고 서로를 매섭게 쏘아보기 시작했어요.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떡을 사이에 두고 엄숙하고 매섭게 서로를 쏘아보는 노부부

열린 문틈과 불청객

시침 뚝 떼고 앉아 있는 방 안에는 오직 숨소리만 색색 울렸답니다. 영감은 눈꺼풀 하나 깜빡이지 않으려 애를 썼고, 할멈 역시 턱을 빳빳이 세운 채 영감의 입술만 뚫어져라 지켜보았지요. 조금만 참으면 달콤한 떡이 오롯이 제 차지가 될 판이니, 두 사람 모두 혓바닥을 굳게 묶어 둔 셈이었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바깥마당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사립문이 삐걱 열렸습니다. 웬 낯선 사내가 고개를 들이밀며 두리번거렸지요. 대낮에 남의 집을 털러 다니는 도둑이었답니다. 사내는 방 안에 인기척이 없는 줄 알고 살금살금 툇마루로 올라왔어요.

도둑이 방문을 홱 열었을 때, 눈앞에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두 노인이 석상처럼 마주 앉아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내는 소스라치게 놀라 멈칫했지만, 영감도 할멈도 눈길 하나 돌리지 않았지요. 도둑을 보고 소리를 지르는 순간 내기에서 지고 떡을 빼앗기게 되니까요.

열린 문틈으로 당황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주 앉아 굳어 있는 노부부를 바라보는 도둑

눈앞에서 털리는 살림

도둑은 턱을 긁적이며 기가 찬 듯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습니다. 아무리 귀신 흉내를 내보아도 노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요. ‘허허, 벙어리들인가? 아니면 넋이 나간 사람들인가?’ 도둑은 슬그머니 간이 커졌습니다.

사내는 안방 구석의 반닫이 궤짝으로 다가가 뚜껑을 벌컥 열어젖혔습니다. 명주 필과 놋그릇, 평생 애지중지 모아 둔 패물이 덜커덩거리며 도둑의 보따리 안으로 마구 쓸려 들어갔어요.

할멈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할멈은 발을 구르며 영감을 향해 눈짓을 보냈습니다. ‘영감! 저 도둑놈 좀 보시오! 어서 소리를 치란 말이오!’ 하지만 영감은 할멈의 눈빛을 고스란히 비껴가며 떡만 쳐다보았지요. 오히려 ‘네가 먼저 소리를 치면 떡은 내 차지다’라는 듯 입술을 더 앙다물고 비죽비죽 웃음을 참을 뿐이었답니다.

도둑은 이제 안방을 넘어 광으로 가 쌀자루를 짊어지고, 벽에 걸린 놋촛대까지 챙겨 넣기 시작했습니다. 세간이 통째로 거덜 나는 순간이었어요.

발을 구르며 영감을 향해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는 할멈과 떡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묵묵부답인 영감, 뒤편에서 물건을 훔치는 도둑

참지 못한 외침과 허탈한 웃음

마침내 도둑이 마당에 놓인 솥단지까지 떼어가려 쇠지레를 덜컹거렸을 때, 할멈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졌습니다. 평생 피땀 흘려 모은 살림이 송두리째 날아가게 생겼는데, 손바닥만 한 떡 한 덩이가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할멈은 벌떡 일어나 마당을 향해 목청을 터뜨렸습니다.
“도둑이야! 도둑놈 잡아라! 이놈, 내 살림 다 털어먹고 어딜 가느냐!”

천둥 같은 고함에 화들짝 놀란 도둑은 지고 있던 보따리를 내팽개치고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쳤습니다. 가까스로 도둑을 내쫓은 할멈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 안의 영감을 쏘아보았지요.
“영감! 집안 꼴이 이 지경이 되도록 보고만 있었소? 떡이 밥보다 중하오?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미련할 수가 있어요!”

할멈이 분통을 터뜨리며 가슴을 칠 때, 정작 영감은 자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듯 일어나며 무릎을 탁 쳤습니다.
“하하하! 임자가 먼저 입을 뗐지? 소리를 질렀으니 내기에서 진 거요! 이제 이 떡은 온전히 내 차지다!”
영감은 제 손에 들어온 떡을 덥석 집어 들며 세상에서 가장 큰 횡재를 한 사람처럼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방 안에는 도둑이 헤집어 놓은 궤짝과 휑뎅그렁한 살림살이, 그리고 떡을 베어 물며 좋아하는 철없는 영감의 웃음소리만이 맴돌답니다. 할멈은 떡이 처음 놓여 있던 텅 빈 밥상을 멍하니 내려다보았습니다. 작은 욕심에 눈이 멀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 채, 그저 떡 한 조각을 움켜쥐고 서 있는 영감의 모습에 기가 막힌 헛웃음과 쓸쓸한 탄식만이 방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하얀 떡을 손에 쥐고 기뻐하며 덩실덩실 춤추듯 일어나는 영감과 텅 빈 상을 허탈하게 바라보는 할멈

『부부의 떡 다툼』은 이웃집에서 제사 음식으로 얻어온 떡을 두고 부부가 말을 하지 않는 내기를 벌이다가, 도둑이 들어 재산을 훔쳐 가는데도 침묵을 지키는 이야기를 다룬 대표적인 우행담(愚行談) 민담입니다. 부부는 평화롭게 밥을 나누어 먹은 뒤 상에 남은 떡을 독차지하기 위해 침묵 내기를 시작하고, 집 안의 재물이 털리는 극심한 손해를 입으면서도 떡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입을 다물다 결국 할멈이 소리를 질러 도둑을 쫓아내게 됩니다. 그러나 영감은 내기에서 이겼다며 떡을 차지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설화에서 떡은 생존의 필수 조건인 밥보다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하여 드러내는 매개체로 작용합니다. 이를 통해 사소한 이익이나 욕심에 눈이 멀어 소중한 것을 잃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비웃고 경계하는 우의적 의미를 전달합니다.

이 설화는 인도 불교 문헌인 『백유경』에서 출발한 우언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에서는 손진태의 『조선민족설화의 연구』(1947), 스티스 톰슨의 『설화학원론』(J2511 ; 타이프 1351), 『한국구비문학대계』, 『한국구전설화』 등에 수록되고 연구되었습니다. 문헌 및 연구 배경에 따라 세부적인 변이 양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부부의 떡 다툼』 민담은 오늘날에도 인간의 탐욕과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교훈적 소재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구비문학 및 설화 연구 자료를 통해 관련 내용과 의미를 접할 수 있으며, 박물관 등의 상시 설명 자료에서도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용한 현대식 박물관 전시실 내부의 전시 패널을 담은 기록 사진

본문에 소개된 ‘부부의 떡 다툼’은 실제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이 아니라 구전되어 온 설화(우행담)입니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의 세부적인 대화나 심리 묘사 등은 전승되는 기본 줄거리를 바탕으로 문학적 효과를 위해 재구성된 창작 허구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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