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을 피해 길일을 잡고 땅속 벌레가 깨어나기 전 온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던 은산리 주민들의 봄맞이 준비와 백제 부흥전쟁 전몰 장졸의 위령제를 담은 은산별신제 이야기입니다.
음력 이월, 은산리에 번지는 기운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는 찬 바람이 잦아들고 새봄이 기지개를 켤 무렵이면 마을 전체가 무척이나 분주해지곤 했습니다. 바로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은산별신제를 모시기 위해서였지요. 은산별신제는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빌며 조상들의 넋을 기리는 큰 축제였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옛 어른들은 이 제를 올릴 때 아무 날이나 함부로 고르지 않았습니다. 땅속에서 뱀이나 벌레가 꿈틀거리며 기어 나오기 전인 음력 이월 그믐이나 한식 이전을 꼼꼼히 살펴, 부정을 타지 않는 윤달을 피하고 제를 주관하는 화주의 생기복덕을 짚어 가장 맑고 복된 날을 가려냈지요. 그러니 새봄을 맞는 은산리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첫날부터 조심스럽고도 정성스러울 수밖에 없었답니다.

발걸음 바쁜 돌이의 심부름
“돌이야! 날이 풀리기 전에 서둘러야 한단다. 어서 화주 어른 댁에 다녀오렴.”
마을 어귀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부름에 돌이는 짚신 끈을 바짝 조여 매었습니다. 벌레가 흙을 뚫고 나오기 전에 서둘러 제일을 가려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지요. 조금만 지체해도 봄볕이 성큼 다가와 흙이 풀릴 판이었답니다.
“네, 어머니! 금방 다녀올게요!”
돌이는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단숨에 내달렸습니다. 골목길을 돌아 화주 어른의 사랑방 문을 벌컥 열 찰나, 그만 마당 한쪽에 단정히 쌓여 있던 마른 장작더미에 발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와르르, 마른 소리를 내며 잘 마른 장작개비들이 마당 가득 어지럽게 쏟아져 내렸지요.
“아이고, 저런!”
돌이는 하얗게 질려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섰습니다. 정갈하게 모아둔 제사 장작을 엎질렀으니, 제일을 받기도 전에 큰일을 그르쳤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려 어쩔 줄 몰랐답니다.

막례 할머니가 건넨 옛이야기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돌이의 어깨 위로 따스한 손길이 닿았습니다. 그날은 조금 달랐지요. 마침 정안수를 뜨러 나오던 막례 할머니였답니다. 할머니는 흩어진 장작을 보더니 야단 대신 빙그레 웃음을 지으셨지요.
“돌이야, 숨부터 고르려무나. 바쁜 마음에 쫓기면 정성이 먼저 흩어지는 법이란다.”
“할머니, 제일을 서둘러 받아야 하는데 제가 장작을 다 엎질렀어요. 부정이라도 타면 어쩌지요?”
돌이가 울먹이며 옷자락을 쥐어잡자, 할머니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별신제는 그저 날짜나 서둘러 맞추는 잔치가 아니란다. 칠백 년 전 백제가 무너지던 때를 아느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군사와 백성들이 임존성과 곳곳에서 쓰러져 돌아가지 못했단다. 복신 장군 같은 분들의 넋과 이름 없는 장졸들의 원혼이 떠돌다 마을에 모진 병마를 불렀다고 전해오지. 그 넋들을 거두어 정성껏 위로하고서야 마을이 비로소 평안을 되찾았단다. 그러니 이 제는 서두르는 일보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마음이 먼저여야 하는 게야.”
할머니의 나지막한 음성은 돌이의 가슴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단순한 날짜 심부름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넋을 기리고 마을의 안녕을 지켜온 깊은 뜻이 그곳에 담겨 있었던 것이지요.

혼자 뛰던 길에서 함께 걷는 길로
돌이는 옷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번쩍 고개를 들었습니다. 혼자 끙끙 앓으며 장작을 치우고 혼자 내달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제사는 온 마을이 한마음으로 모시는 것이었으니까요.
“할머니, 제가 이웃 어른들께 가서 손을 보태달라고 청해 올게요!”
“그래, 참 기특한 생각이로구나.”
돌이는 곧장 골목길을 누비며 외쳤습니다. 떡을 빚던 이웃에게, 짚을 꼬던 어르신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마당의 소동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어르신, 제가 급한 마음에 장작을 쏟았습니다. 백제 장졸들의 넋을 달래는 맑은 장작인데, 손을 좀 보태주십시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혀를 차기는커녕 입가에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하나둘 연장을 내려놓았습니다.
“참, 돌이가 기특하게도 제 뜻을 제대로 알았구나. 이웃 일인데 우리가 가만있을 수 있나!”
한 사람 두 사람, 돌이의 뒤를 따라 화주 어른의 마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답니다.

온 마을에 깃든 따스한 평안
쏟아졌던 장작은 마을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눈 깜짝할 사이에 정갈한 단을 이루었습니다.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솔가지 한 잎까지 깨끗이 쓸어내며 화주의 집 안팎을 맑게 닦아내었지요.
잠시 후, 사랑방 문이 열리고 안에서 기도를 올리던 화주 어른이 마당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가지런히 모인 사람들과 반듯하게 쌓인 장작을 바라보며 화주 어른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답니다.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이토록 맑게 모였으니 하늘도 길일을 내어주셨네. 뱀과 벌레가 흙을 털기 전, 윤달을 피해 복된 날로 제를 올리기로 하였네.”
그 말씀을 듣자 마당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안도의 빛이 번졌습니다. 돌이는 마당 한구석에서 흙 묻은 손을 털며 가슴 벅찬 숨을 내쉬었지요.
작은 아이의 서툰 발걸음에서 번진 소동이, 서로의 손을 맞잡는 따뜻한 연대로 이어져 마침내 은산리의 복된 봄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었답니다.

은산별신제의 유래와 성격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서 행해지는 은산별신제는 1966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된 전통 문화 축제입니다. 이 행사는 농경의례와 시장 번영책이 상생되어 동제와 별신제의 이중적 성격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근원 설화에 따르면 7세기 후반 백제 부흥 전쟁에서 장렬히 전몰한 장졸의 위령제 성격을 지니며, 복신 장군과 도침 대사 등의 백제 부흥 운동 주역들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다만 토진대사가 복신장군과 함께 백제 부흥 운동을 한 도침대사의 와음으로 인한 오기인지, 아니면 제당 중수기에 기록된 토지신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제일 선정과 신격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이전에 제일(祭日)은 특정한 날짜로 고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새봄에 벌레나 뱀이 나오기 이전인 음력 2월 그믐이나 한식 이전의 특정한 날을 잡거나, 화주의 생기복덕을 가려 운이 닿는 길일을 선정하되 윤월은 피했습니다.
기원의 대상이 되는 신격으로는 상당의 산신, 복신장군, 토진대사와 하당의 장승이 있습니다. 특히 토진대사와 복신장군은 같은 복색에 각각 칼과 창을 들고 있어 싸움을 연상시키는 장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은산별신제 전승
오늘날에는 은산별신제보존회에서 양력 3월 마지막 주의 일주일 동안을 별신제 기간으로 고정하여 전승하고 있습니다. 특히 1978년부터는 짝수 해에는 대제, 홀수 해에는 소제 방식을 번갈아 취하고 있습니다.
짝수 해에 열리는 대제는 본제 외의 여러 제의 절차가 옛 모습대로 베풀어지고 물자와 사람도 대규모로 동원되며, 유교식 제사와 무속의 굿이 혼합된 제의 양상을 보입니다. 반면 홀수 해에 열리는 소제는 대제에서 행하는 진대베기, 꽃받기, 상당굿, 하당굿 등을 생략하고 본제와 독산제, 장승제를 단독으로 행하는 화주 중심의 유교적 동제 형태를 띱니다.
오늘날 은산별신제 기간에는 강다리, 척사대회, 제기차기 등의 부속 행사가 함께 열립니다.

이야기 속 허구와 역사적 사실의 경계
제시된 이야기 속 등장인물인 소년 돌이나 막례 할머니의 대화, 마당에서 장작을 쏟는 소동, 이웃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상호작용 등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창작된 허구적 요소입니다. 은산별신제가 백제 부흥 운동 전몰 장졸 위령제 성격을 지니고 윤달을 피해 길일을 잡던 전통 자체는 실제 역사적·민속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나, 이야기 속 개별 인물의 일화나 구체적인 에피소드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것입니다.
관련 장소
은산리 (은산별신제 개최 장소)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서 행해짐 (상세 기관·박물관·유적 주소는 미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