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발 느림기 울리는 날의 소반

골목마다 풍물이 울려 퍼지던 날, 마당 한구석에서 쌀을 쏟아 당황하던 아이가 실타래와 햅쌀을 얹어 정성스레 소반을 차리게 된 사연. 서울 용산구 용문동 남이장군사당제의 '걸립'과 전통 의례 속으로 걸음합니다.

용문동 언덕 너머 울리는 소리

서울 용산구 용문동 언덕배기에는 예부터 남이 장군을 모신 당이 자리하고 있지요. 훗날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된 ‘남이장군사당제’는 마을 사람들에게 ‘용문동부군당굿’이라는 친근한 이름으로도 깊이 스며 있는 곳이랍니다.

당제가 가까워 오면 용문동은 골목마다 잔치 준비로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제사에 올릴 정성스러운 제물을 마련하기 위해 풍물패가 앞장서서 가가호호를 방문해 추렴을 받는 ‘걸립’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대문 앞을 깨끗이 쓸고 닦으며 한 해의 안녕을 빌 채비를 서둘렀지요.

걸립 의례 중 마을 골목을 지나며 풍물을 울리는 풍물패와 집 앞을 정리하는 주민들

장작더미와 어머니의 당부

그런데 말이지요, 온 마을이 분주한 그 아침에 마당 한구석에서 턱을 괴고 한숨을 푹푹 내쉬는 아이가 있었답니다. 바로 열두 살 돌이었지요. 아침 일찍 들에 나간 어머니는 대문을 나서며 돌이에게 신신당부를 남기고 갔습니다.

“돌이야, 오늘 풍물패 어르신들이 걸립을 오실 게다. 잊지 말고 소반에 한지 곱게 깔고, 쌀이랑 실타래를 식구 수대로 올려 마당에 내놓아라. 그리고 사랑방 앞 장작도 해 지기 전에 다 패서 쌓아 두거라.”

엄마가 남기고 간 말을 떠올리며 마당을 둘러보니, 산더미처럼 쌓인 통나무가 까마득했습니다. 장작을 다 패려면 반나절도 모자랄 판인데, 아랫마을 골목에서는 벌써 쿵덕쿵덕 풍물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지요.

마당 한구석에서 턱을 괴고 걱정스레 앉아 있는 소년 돌이

마당에 쏟아진 하얀 쌀

“에라, 장작부터 후딱 해치우고 상을 차려야지!”

돌이는 소매를 툭툭 걷어붙이고 도끼를 번쩍 집어 들었습니다. 쾅, 쾅 나무를 쪼개는 손길이 빨라질수록 마음도 바빠져 발걸음이 엉켰지요. 마루 밑에 챙겨 두었던 곡식 바구니 곁을 허겁지겁 지나치다 그만 도끼 자루 끝으로 바구니를 툭 건드리고 말았답니다.

스르륵, 촤르르! 제물로 올릴 귀한 쌀이 마당 흙바닥에 하얗게 쏟아져 내렸습니다.

“아이쿠, 이를 어째!”

돌이는 새파랗게 질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흙과 뒤섞여 버린 쌀알을 수습하려 손을 바르르 떠는데, 아랫골목에서 들려오는 징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져 돌이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지요.

바닥에 쏟아진 하얀 쌀을 바라보며 당황해하는 소년

막례 할머니의 다정한 손길

“돌이야, 마당에서 무얼 그리 부산을 떠느냐?”

사립문 틈으로 이웃집 막례 할머니가 기우뚱 고개를 내밀며 들어섰습니다. 흙투성이가 된 쌀을 쥐고 눈물이 그썽해진 돌이를 보자, 할머니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곁에 쭈그려 앉았지요.

“할머니, 장작도 다 못 팼는데… 쌀까지 쏟아버렸어요. 걸립패가 곧 올 텐데 어머니께 야단맞을까 봐 무서워요.”

할머니는 흙 묻은 쌀을 바가지로 가만히 그러모아 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독였습니다.

“걸립이라는 건 말이다, 누구를 혼내려고 도는 게 아니란다. 온 마을 사람이 정성을 모아 장군님께 올리고, 우리 식구들 한 해 평안을 비는 잔치 같은 날이지. 너무 조급해할 것 없다. 혼자 끙끙 앓으니 일이 꼬이는 게지.”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돌이의 흙투성이 어깨를 가볍게 쓸어내렸답니다.

마당에서 주저앉아 쌀을 그러모으며 소년을 따뜻하게 다독이는 할머니

역과 일손을 나누는 지혜

할머니의 따뜻한 눈빛을 본 돌이는 문득 안방에서 팽이를 치고 놀던 어린 동생을 불렀습니다.

“얘야, 나와서 형 좀 도와다오!”

돌이는 더 이상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떼를 쓰지 않았지요. 동생에게 잘게 쪼갠 장작을 처마 밑으로 날라 차곡차곡 쌓게 하고, 자신은 뒤주에서 깨끗한 쌀을 다시 바가지에 정갈하게 퍼 담았습니다. 둘이 손을 맞추니 산더미 같던 장작도 금세 단정하게 정리되었어요.

그다음 돌이는 깨끗한 소반을 꺼내 흰 한지를 반듯하게 깔았습니다. 그 위에 햅쌀과 엽전 몇 푼을 정성스레 놓고, 어머니가 일러주신 대로 할머니와 부모님, 돌이와 동생까지 식구 수에 맞추어 하얀 실타래를 가지런히 얹었답니다.

마루에 놓인 하얀 한지 소반 위에 햅쌀, 엽전, 실타래를 정성스레 올리는 모습

지네발 느림기를 맞이하다

마당 정리가 끝나자마자 대문 밖에서 쿵덕쿵덕 꽹과리와 징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습니다. 마침내 지네발을 길게 내린 커다란 느림기를 앞세운 풍물패가 골목길을 돌아 돌이네 집 마당으로 환하게 밀려들었지요.

“지신 밟고 부군님께 복을 비니, 이 댁 가내에 두루 평안이 가득하소서!”

풍물패 상쇠의 시원한 덕담에 맞추어 북과 징이 신명 나게 울렸습니다. 돌이는 마당 한가운데 정갈하게 차려둔 소반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쳐 올렸습니다.

풍물패 어르신들은 소반 위에 식구 수대로 정갈하게 놓인 실타래와 곡식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추렴을 바치고 온 식구의 무병장수를 기원받는 그 순간, 이마의 땀을 훔치는 돌이의 얼굴에도 안도와 자부심이 활짝 피어올랐답니다.

마당 중앙에서 소반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쳐 든 돌이와 풍물패의 등장

남이장군사당제와 역사적 배경

남이장군사당제는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용문동부군당굿’이라고도 불립니다. 조선 시대 역사적 인물인 남이(1441~1468) 장군의 비극적 죽음을 원혼으로 삼아 당의 역사적 근거를 부여하고, 무속 일반의 신격들과 함께 봉안하여 마을의 축제로 발전시킨 전통 마을제입니다.

사당의 유래에 따르면 남이 장군이 용산에서 모병해 훈련시켰고 한강변 새남터에서 참화를 당해 당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원래 원효로 2가 당고개에 있던 당은 1900년대 초 장군이 마을 사람의 꿈에 나타나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고 합니다.

사당 내 봉안된 신격과 제물

서울 용산구 용문동에 위치한 남이장군 사당 내부에는 남이 장군 영정을 비롯해 부군대감내외상, 최영장군상, 정추정씨와부인상, 산신령내외분, 토지관장님, 천신대감상, 맹인내외상 등 각종 화분이 모셔져 있어 마을의 수호신앙 대상을 폭넓게 포용하고 있습니다. 제사상에는 편, 술, 과일, 나물, 탕 등을 유가식 제사 법도에 맞게 차립니다.

주요 의례 절차

당제가 열리기 하루 전에는 산천동부군당에 가서 꽃을 받아오는 ‘꽃받아오기’ 의례를 치릅니다. 이는 산천동에서 여신을 받들어 모셔오는 의미로, 용문동부군당과 산천동부군당의 결합을 뜻합니다.

본행사 전에는 용문동 전 지역을 대상으로 ‘걸립’이 실시됩니다. 지네발을 내린 느림기를 앞세운 풍물패가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추렴을 받으며, 주민들은 소반에 한지를 깔고 돈과 곡식을 차려 내놓고 식구 수만큼 실타래를 놓아 가내 평안을 기원합니다.

당제는 유가식 제례 법도에 따라 일동배례, 초헌, 아헌, 종헌, 독축, 첨작, 일동배례 순으로 진행되며, 이어 무속식 당굿(주당물림, 부정청배, 가망청배, 장군신장, 불사, 말명, 조상, 상산, 별상, 신장, 대감, 제석, 성주, 창부, 황제풀이, 군웅, 뒷전)이 펼쳐집니다. 제사가 끝난 뒤에는 제주와 화주 및 마을 어른들이 당에 모여 무사히 마쳤음을 감사하고 사죄하는 ‘사례제’를 지내며, 대제 종료 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있는 남이 장군묘에 가서 간단히 제를 올리고 회향합니다. 이는 한강변 부군당굿(서빙고·동빙고·보광동·한남동·큰한강부군당굿 등)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오늘날의 전승과 변화

남이장군사당제는 현대에 들어오면서 여러 변화를 거쳐 이어지고 있습니다. 원래 음력 10월 초하루에 거행되던 본행사는 현재 양력으로 전환되었습니다. 특히 1990년대 중반부터는 꽃받아오기 행사를 확장하여 100여 개의 행렬등이 용문시장을 거쳐 산천동부군당에까지 행진하는 꽃등 행렬을 전야제로 운영하여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축제적 성격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제가 진행되는 동안 남이 장군이 반란군을 정벌하기 위하여 출진하던 옛 모습을 재현하는 ‘장군출진’ 행사가 최근 새롭게 만들어져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설과 사실의 경계

남이장군 사당의 건립 배경과 1900년대 초 장군이 꿈에 나타나 현재 위치로 옮겼다는 이야기는 오랜 전승으로 전해지는 전설입니다. 또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구체적인 생활 소동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창작된 요소입니다. 반면, 남이장군사당제가 1999년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된 점, 걸립, 꽃받아오기, 유가식 당제 및 당굿, 사례제 등의 구체적인 의례 절차와 현대적 양력 전환 및 꽃등 행렬 등은 실제 조사된 역사·민속 사실입니다.

관련 장소

남이장군 사당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문동 106번지

대지 294㎡에 건평 33㎡ 크기의 3칸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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