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노정기를 앞두고 꽹과리를 쥔 만석의 손끝이 파르르 떨립니다. 경기도 남부 지역 세습무당 굿에서 산이들이 서서 연주하던 고유한 무악 장단, 쇠풍장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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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이야기의 호흡을 따라 들어보세요.
찬 새벽 공기 속의 꽹과리
새벽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경기도 남부의 어느 마을 굿청 마당이었답니다. 쌀쌀한 바람이 두루마기 옷자락을 파고들자, 젊은 산이 만석은 시린 손을 모아 입김을 호호 불었지요. 멍석이 깔린 마당 한가운데에는 큰 굿을 알리는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만석아, 손가락 굳지 않게 채를 바투 쥐어라.”
곁에서 도당굿의 판을 지켜보던 영감이 낮게 이르자, 만석은 들고 있던 꽹과리를 고쳐 쥐었습니다. 이제 곧 선증애굿꾼이 나서는 손님노정기가 시작될 참이었지요. 큰 거리를 올리기 전, 산이들이 두루마기를 입고 서서 쇳가락을 울리는 쇠풍장으로 마당의 기운을 단단히 열어야 했습니다. 만석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답니다.

어긋나 버린 발걸음과 쇳소리
만석은 마을 사람들의 기대 어린 시선을 느끼자 그만 마음이 앞서고 말았습니다. 어서 당당하게 첫 가락을 터뜨려 인정받고 싶었던 탓이지요. 꽹과리 채를 쥔 손을 번쩍 들어 힘차게 쇠를 내리쳤습니다.
“쨍! 쨍그랑, 쨍!”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요? 터벌림의 호흡인 느린 3소박 5박 장단을 지그시 눌러 밟아야 하거늘, 만석의 채는 제 성미를 이기지 못하고 뜀박질하듯 빨라졌습니다. 앞으로 세 걸음 나아가고 뒤로 세 걸음 물러서는 삼진삼퇴의 발걸음마저 그만 꼬여 멍석 끝자락을 헛디딜 뻔했지요. 쇠풍장의 장단이 뚝 끊기며 마당 안이 싸늘해졌답니다.

사방을 바라보아라
글쎄, 영감이 훌쩍 다가와 만석의 꽹과리 테를 손바닥으로 묵직하게 감싸 쥐지 않겠어요? 쇠의 울림이 단숨에 멎었지요.
“무얼 그리 쫓기듯 내달리느냐?”
만석이 얼굴이 벌게져 고개를 떨구자 영감이 두루마기 자락을 가다듬으며 마당 네 귀퉁이를 천천히 가리켰습니다.
“쇠풍장은 혼자 날뛰는 농악의 두레풍장이나 들풍장이 아니다. 경기도 남부 도당굿의 무악 장단이야. 사방을 향해 예를 다하며 터를 벌리는 무악 가락인 것을 잊었느냐? 마음이 급하다고 느린 장단을 건너뛰면, 그 뒤에 올 겹마치기도 자진굿거리도 다 무너지는 법이다.”
만석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은 눈앞의 자랑이 아니라, 도당굿 마당을 바르게 여는 산이의 약속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암채와 숫채의 어우러짐
“다시 가자. 내 박자를 받아라.”
영감이 먼저 묵직한 숫채장단으로 길을 열었습니다. 쿵 하고 가슴을 울리는 듯한 느린 3소박 5박의 호흡이 마당에 깔렸지요. 만석은 조급함을 비워내고 영감의 소리를 조용히 감싸 안는 암채장단으로 화답했습니다.
“챙— 챙, 쨍그랑 챙.”
음과 양이 부드럽게 맞물리듯 두 산이의 꽹과리 소리가 하나로 엮이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셋, 뒤로 셋, 삼진삼퇴의 정연한 걸음걸이로 동서남북 사방을 차례로 마주하며 터벌림가락을 펼쳐냈지요. 얽혔던 매듭이 스르르 풀리는 듯 마당의 공기가 편안하게 가라앉았답니다.

마을 안길로 퍼져 나간 울림
그러고 보니 터벌림가락에서 겹마치기가락으로, 그리고 점차 흥이 오르는 자진굿거리가락으로 넘어가자 쇠풍장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두루마기 자락이 사방으로 시원스레 흩날리며 맑고 곧은 쇳소리가 굿청 담장을 훌쩍 넘어섰지요.
마당 귀퉁이에서 바쁘게 땔감을 패던 아낙도, 마당을 쓸다 멈칫했던 노인도 일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조급하게 달아오르던 마당의 숨결이 쇠풍장의 든든한 가락을 타고 차분하게 가라앉아, 마을 안길 구석구석까지 깊은 평온을 건네주고 있었답니다.

경기도 남부 세습무당 굿의 독창적 쇳가락 연주, 쇠풍장
쇠풍장은 경기도 남부 지역의 세습무당 굿에서 산이(악사)들이 서서 하는 굿거리에 등장하는 쇳가락 연주 대목을 총괄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오로지 경기도 남부 지역의 도당굿 등에서만 독자적으로 사용되며, 농악과 관련된 두레풍장·들풍장 등과 구별되는 전형적인 무악 장단의 사례입니다.
이 연주 대목은 선증애굿꾼(입무)이 도맡는 손님노정기나 군웅노정기 등의 굿거리 전후에 행해집니다. 산이들이 두루마기를 입고 꽹과리를 치며, 터벌림의 의례로 삼진삼퇴(앞으로 세 걸음 나아가고 뒤로 세 걸음 물러서는 것)를 하며 사방으로 쇳가락을 연주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장단 구성 면에서는 터벌림가락, 겹마치기가락, 자진굿거리가락 등 여러 가락이 혼용됩니다. 3소박 5박의 느린 장단에서 시작하여 점차 빠른 장단으로 진행되며, 암채장단과 숫채장단이 조화를 이루어 음양 장단을 이룹니다.
전통 무악으로서의 가치와 전승
쇠풍장은 경기도 남부 지역의 도당굿 등 세습무당 굿의 무악 체계 속에서 고유한 음악적·의례적 전통을 지니며 전해져 왔습니다. 농악의 타악 장단과 명확히 구분되는 무악 장단으로서, 경기 남부 지역 무속 음악의 독자성과 예술적 특징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통 문화 유산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 허구와 역사·민속적 사실의 경계
앞서 전개된 이야기 속에서 젊은 산이 만석이 겪는 긴장과 실수, 영감의 즉석 지도, 그리고 쇳소리에 놀라 일손을 멈추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등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창작된 서사적 허구입니다. 이를 실제 역사적 사건이나 고증된 사실로 오인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경기도 남부 도당굿에서 산이들이 서서 꽹과리를 치며 터벌림 의례로 삼진삼퇴를 하고 사방으로 연주하는 연행 방식, 3소박 5박의 장단 흐름, 암채장단과 숫채장단의 음양 조화 등은 문헌과 조사 자료에 기록된 객관적 무악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