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이 곱게 피어나는 삼월, 한강에서 올라온 귀한 복어로 하돈갱을 끓이려던 돌이가 엉뚱한 그릇을 집어 들며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세시풍속 이야기입니다.
도화꽃 필 적에 찾아온 한강 하돈
복사꽃이 아직 가지에서 떨어지지 않은 삼월이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강 나루터로 분주히 향하곤 했습니다. 강물에서 잡히는 새끼돼지처럼 통통하다 하여 ‘하돈(河豚)’이라 불리던 복어가 한 해 중 가장 기름지고 살이 오르는 때였기 때문이지요. 옛 책 『동국세시기』에도 삼월의 절식으로 하돈갱, 곧 복어국을 빼놓지 않았답니다.
강바람이 부드러워진 어느 봄날, 돌이네 집 부엌도 아침 일찍부터 부산스러웠습니다. 솥단지 밑에서는 마른 장작이 딱딱 소리를 내며 타올랐고, 도마 위에는 한강에서 갓 건져 올린 하돈 두 마리가 매끄러운 배를 드러내고 놓여 있었지요. 열 살 난 돌이는 소매를 걷어붙인 채 할아버지 곁에 바짝 붙어 섰습니다.
“할아버지, 오늘 끓이는 게 정말 그 귀하다는 하돈갱이에요?”
할아버지는 잔주름이 번지는 눈가로 돌이를 돌아보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셨지요.
“그렇단다. 옛적 허균 선생도 『도문대작』에서 한강 복어가 으뜸이라 했지. 하지만 맛이 빼어난 만큼 무서운 독을 품고 있으니, 다루는 법을 한 치라도 어기면 큰일이 난단다. 돌이 네가 도마 옆에 둔 해독 재료들을 잘 살펴야 해.”


손이 엇갈린 부엌 한구석
“알겠어요, 할아버지! 미나리랑 백반이랑 참기름이지요?”
돌이는 큰소리를 치며 싱그러운 푸른빛이 도는 청미나리를 한 바구니 가득 씻어 건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마당 쪽에서 툇마루를 닦던 어머니가 돌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요. 마음이 조급해진 돌이는 솥으로 달려가며 그만 도마 옆에 놓인 종지들을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조리 순서대로라면 하돈의 살을 토막 내어 먼저 참기름에 달달 지져야 하건만, 돌이는 맑은 물이 끓는 솥에 밑간도 안 한 토막 살을 풍덩 던져 넣으려 했습니다. 게다가 쓴맛과 독기를 가라앉힐 백반 가루를 넣어야 할 자리에 마른 소금 그릇을 불쑥 집어 들었지요.
“어이쿠, 돌이야! 손 멈추어라!”
불길을 살피러 부엌에 들어서던 할아버지의 벼락같은 외침에 돌이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습니다. 손에 쥔 사기종지가 달가닥 소리를 내며 흔들렸지요.
“아, 할아버지! 소금이… 아니었나요?”
“순서가 송두리째 뒤엉켰잖느냐. 한강 하돈은 살이 달지만 독이 서려 있어 아무렇게나 물에 넣으면 안 된다. 지혜를 모은 해독법이 없으면 귀한 봄 절식이 아니라 집안을 뒤흔들 재앙이 되는 법이야.”


기름 냄비와 푸른 미나리의 지혜
돌이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습니다. 자칫하면 온 식구가 먹을 봄날의 국을 망칠 뻔했으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지요.
“할아버지, 그럼 이제 이 살점들은 어쩌지요? 다 버려야 하나요?”
울먹이는 돌이의 어깨를 할아버지가 묵직한 손으로 토닥였습니다.
“버리긴 왜 버려. 찬찬히 바로잡으면 되지. 하돈갱을 끓일 땐 살만 곱게 토막 내어 먼저 참기름에 노릇하게 지져내는 방법이 있단다. 참기름과 청미나리, 백반과 곤쟁이젓이 괜히 조리법에 적혀 내려오는 게 아니야. 우리 선조들이 독을 누르고 살을 보하기 위해 찾아낸 길이란다.”
돌이는 깊은숨을 들이쉬고는 솥뚜껑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무쇠 팬에 고소한 참기름을 넉넉히 둘렀지요. 치이익 소리와 함께 뽀얀 하돈 살점이 기름 위에서 춤을 추듯 익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돌이는 할아버지가 일러준 대로 백반을 적절히 써서 다스리고, 아삭한 청미나리를 듬뿍 얹어 맑은장과 함께 솥에 안쳤습니다.
어느덧 부엌 안에는 비린내 하나 없이 맑고 구수한 국 냄새가 자욱하게 퍼져 나갔습니다.


삼월의 별미와 뜻밖의 손사래
마침내 상 위에 오른 하돈갱은 푸른 미나리가 맑은 국물 위에 그림처럼 떠올라 보는 이의 입맛을 돋우었습니다. 뽀얀 복어 살은 씹을수록 달고 부드러웠지요.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낸 돌이는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할아버지, 참말로 시원하고 개운해요! 온몸에 봄기운이 확 도는 것 같습니다.”
돌이는 입가심을 하려고 툇마루 구석에 놓인 숭늉 바가지를 향해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지요.
“국을 시원하게 먹었으니 이제 따뜻한 숭늉 한 사발 마셔야겠어요.”
그 순간, 밥상을 정리하던 할아버지가 번개처럼 돌이의 팔목을 낚아채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안 된다, 돌이야! 하돈갱을 먹고 난 뒤에는 숭늉을 마시는 것을 크게 꺼리는 법이야!”
돌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멈칫했습니다.
“예? 숭늉도요? 국을 다 먹고 나서 숭늉 한 모금도 안 되나요?”
“그렇고말고. 하돈을 다스리는 옛 법에는 먹은 뒤 숭늉을 마시지 말라는 금기가 단단히 박혀 있단다. 참기름과 미나리로 애써 독을 누르고 몸을 보양해 놓았는데, 숭늉을 들이켜 그 기운을 흩뜨릴 셈이냐?”
빈 바가지를 손에 쥔 채 머리를 긁적이는 돌이의 얼빠진 모습에 방 안에 모여 앉은 온 가족이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봄바람에 살랑이는 도화꽃 그늘 아래, 부엌 소동으로 시작된 삼월의 하돈갱 상차림은 유쾌한 웃음소리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답니다.

복어국(하돈갱)은 음력 3월에 즐겨 먹던 전통 절식으로, 복어를 주원료로 하여 끓인 국입니다. ‘하돈(河豚)’이라는 이름은 강물 하(河) 자와 새끼돼지 돈(豚) 자를 써서, ‘강에서 잡히는 새끼돼지’라는 생김새와 성질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복어국에 대한 기록은 여러 의학서와 서적에 전해지는데, 복어국 자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등장합니다. 또한 《동국세시기》에는 도화(복사꽃)가 아직 떨어지기 전인 음력 3월의 절식으로 하돈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본초강목》, 《동의보감》, 《도문대작》,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부인필지》 등 다양한 문헌에서 하돈과 하돈갱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리법과 해독 방법에 있어서는 청미나리, 유장, 백반, 참기름, 맑은장 등을 넣어 끓이거나, 살만 토막 낸 하돈을 참기름에 지져서 끓였습니다. 특히 독을 해독하기 위해 미나리, 참기름, 곤쟁이젓, 백반 등을 사용하였으며, 음용 후 숭늉을 마시는 것을 크게 꺼렸습니다.
지역별 복어의 특징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허균의 《도문대작》에 따르면 한강 일대에서 잡히는 복어가 가장 맛이 좋으나 독이 있어 죽는 일이 많았고, 영동 지방의 복어는 맛이 한강 복어에 미치지 못하지만 독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어국과 관련된 과거의 세부적인 조리 풍속이나 절식 문화는 옛 문헌을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구체적인 전승 양상이나 지역별 변화 과정에 대해서는 별도의 문헌적·사실적 기록이 제한적이므로, 과거 문헌에 기록된 전통 음식 문화로서 그 역사적 의미와 조리 지혜를 이해하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본문의 이야기에서 다루어진 돌이와 할아버지의 대화, 부엌에서 소금과 백반을 착각해 벌어진 소동, 식후에 무심코 숭늉 바가지를 집어 들었다가 제지당하는 에피소드 등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창작된 허구입니다.
반면, ‘하돈’이라는 어원의 유래, 음력 3월의 절식으로서 《동국세시기》와 《경도잡지》에 기록된 사실, 청미나리·참기름·백반·곤쟁이젓을 활용한 조리 및 해독법, 식후 숭늉을 꺼렸던 금기, 그리고 《도문대작》에 나타난 한강 일대와 영동 지방 복어의 특징 등은 모두 엄격한 역사적 문헌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