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삼거리 능수버들과 푸른 약속

세 갈래 길이 모여드는 큰 주막 앞에 아버지가 꽂아두고 떠난 버드나무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나는 동안, 그 아래에서 홀로 아버지를 기다리던 처녀 능소에게는 과연 어떤 인연이 찾아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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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길목에 꽂아둔 버들가지

옛날 조선 중엽에, 천안삼거리라 불리는 길목이 있었습니다.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과 경상도, 전라도로 내려가는 길이 세 갈래로 나뉘는 곳이라, 사시사철 나그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큰 목이었지요.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오랜 책에도 고을에서 여섯 리 떨어진 곳에 손님들이 묵어가던 ‘삼기원’이라는 원이 있었다고 적혀 있을 만큼 오가는 사람이 참으로 많았답니다.

그 삼거리 주막거리에 유봉서라는 군정이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유봉서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아내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 딸아이 하나만을 애지중지 품에 안고 길러왔지요. 그런데 어느 날, 나라에 큰 변고가 생겨 북쪽 변경의 수자리로 멀리 떠나라는 나라의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린 딸을 험한 변경으로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유봉서는 천안삼거리에 자리한 삼례 주막의 주모를 찾아가 두 손을 모아 간곡히 청했습니다.

“주모, 내가 나라의 명을 받아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먼 길을 떠나오. 부디 이 어린것을 거두어 밥 한술 굶지 않게만 보살펴 주시오.”

주모가 어린아이의 뺨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유봉서는 주막 앞 마당가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러고는 길가에서 꺾어 든 푸른 버드나무 가지 하나를 흙 속에 깊숙이 꽂아 넣었지요. 아버지는 딸아이의 작은 손을 꼭 쥐며 눈을 맞추었습니다.

“아가, 이 아비가 떠나더라도 울지 말고 씩씩하게 자라야 한다. 이 버들가지가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워 큰 나무가 될 때쯤에는 내가 꼭 너를 데리러 돌아오마.”

어린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옷자락을 놓아주었습니다. 흙에 꽂힌 버드나무 가지 위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떠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스라이 멀어져 갔지요.

삼례 주막 주모에게 간곡히 청하는 유봉서의 모습
길가에 버드나무 가지를 꽂는 유봉서

능수버들처럼 자라난 아이

봄이 가고 가을이 오며 세월은 쉼 없이 흘렀습니다. 길가에 꽂아두었던 버들가지는 비바람을 맞으며 푸른 싹을 틔웠고, 해가 거듭될수록 가지를 넓게 드리우며 우람한 나무로 자라났지요. 연둣빛 가지가 길게 늘어져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곱고 의젓했습니다.

하지만 북쪽으로 떠난 아버지는 해가 바뀌어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길을 지나던 장사치들이 북녘의 변방 소식을 전할 때마다 딸아이는 가슴을 졸이며 귀를 기울였지만, 아버지의 이름 석 자는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지요. 그럼에도 아이는 슬퍼 주저앉지 않고 주막 일을 부지런히 돕고 베를 짜며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주막을 오가던 사람들은 하늘거리는 버드나무 아래에서 단정하게 길쌈을 하는 처녀를 보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저 버드나무가 어찌나 잎을 무성히 드리우는지 능수버들이 따로 없구려. 그 나무 아래서 아비를 기다리는 유 군정의 딸도 꼭 그 버들을 닮았네.”

마을 사람들과 나그네들은 어느덧 처녀를 ‘능소’라는 고운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능소는 버드나무 그늘 밑에 서서 남쪽과 북쪽으로 뻗은 세 갈래 길을 묵묵히 바라보곤 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신다면 분명 저 길목을 타고 오실 테니, 하루도 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주막 앞마당에 우람하게 자라난 능수버들
주막 마루에서 베를 짜는 능소의 모습

삼거리 길목에 쓰러진 과객

어느 해 가을, 천안삼거리는 유난히 들썩였습니다. 조정에서 인재를 뽑는 식년시 과거 시험이 열린다는 방이 붙어, 경상도와 전라도 곳곳에서 선비들이 한양을 향해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 질 녘, 흙먼지가 이는 고갯마루 쪽에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던 한 젊은 선비가 주막 앞마당 능수버들 밑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짚신은 다 찢어졌고 도포 자락은 붉은 핏자국과 흙탕물로 엉망이었지요.

“아이고, 저게 웬일이람! 선비님, 선비님!”

마당에서 바가지를 씻던 주모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습니다. 방 안에서 베를 짜던 능소가 급히 뛰어나와 쓰러진 선비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이마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숨소리가 거칠었지요. 능소는 주모와 함께 그를 방으로 부축해 눕히고는 정갈한 물을 떠와 마른 입술을 적셔 주었습니다.

한참 뒤에야 간신히 눈을 뜬 선비는 신음하며 능소를 바라보았습니다.

“이곳이… 어디요? 내 봇짐은… 과거에 낼 글을 적은 책과 노잣돈은 어찌 되었소?”

“선비님, 진정하십시오. 이곳은 천안삼거리 삼례 주막입니다. 봇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슨 변을 당하신 것입니까?”

선비는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기막힌 사연을 털어놓았습니다.

“내 이름은 박현수라 하오. 이번 식년시에 응시하려 천릿길을 걸어왔는데… 고갯마루 으슥한 숲길에서 칼을 든 도적 떼를 만나 노잣돈과 옷가지를 모조리 털리고 매질까지 당했소. 이제 과거 날짜는 턱밑인데 한 푼도 남지 않았으니… 내 꿈도 여기서 끝장나고 말았소.”

박현수는 분통함과 억울함에 목이 메어 헛기침을 토해냈습니다. 낯선 고장에서 빈털터리가 된 채 크게 다쳤으니, 낙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지요.

주막 앞 능수버들 아래 쓰러진 선비 박현수
쓰러진 선비를 살피는 능소

능소의 손길과 맺은 언약

능소는 멍투성이가 된 박현수의 상처를 보며 깊은 연민을 느꼈습니다. 먼 길을 가다 뜻밖의 재액을 만나 홀로 쓰러진 처지가, 변경으로 떠난 뒤 어디선가 고초를 겪고 있을지도 모를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던 것이지요.

“선비님, 몸부터 추스르셔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야 글도 짓고 뜻도 펼치는 법이지요.”

능소는 그날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박현수를 돌보았습니다. 뒷산에 올라가 타박상에 좋다는 약초를 뜯어와 정성껏 찧어 바르고, 맑은 미음을 끓여 숟가락으로 떠먹였습니다. 밤이면 등잔불을 켜두고 박현수의 열이 내릴 때까지 젖은 수건으로 이마를 닦아주었지요.

박현수는 며칠 동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에도 늘 곁을 지키며 땀을 닦아주던 능소의 따뜻한 눈빛을 똑똑히 기억했습니다. 닷새가 지나자 마침내 박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맑은 기운을 되찾은 박현수는 마당가 능수버들 아래에서 능소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습니다.

“낭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저 길바닥에서 객사했을 것이오. 혈육도 아닌 나를 이토록 지극정성으로 살려주었으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삼거리는 온갖 사람이 스쳐 가는 곳이나, 곤경에 처한 이를 보고 모른 척 지나칠 수는 없었을 뿐입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가에 깊은 신뢰와 은근한 정이 어렸습니다. 박현수는 품속에서 능소의 손을 꼭 쥐며 다짐했습니다.

“내 비록 지금은 빈손이나, 낭자의 어진 마음을 평생 잊지 않겠소. 과거에 올라 당당히 뜻을 펼친 뒤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와 낭자와 백년가약을 맺겠소.”

능소는 붉어진 뺨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방 안에서 박현수를 간호하는 능소
능수버들 아래서 백년가약을 약속하는 두 사람

남겨둔 쌈짓돈과 한양 길

그러나 약조를 맺고도 박현수의 얼굴에는 다시 짙은 그늘이 드리웠습니다. 한양으로 올라갈 길은 멀고 시험 날짜는 다가오는데, 주머니에는 엽전 한 닢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막 툇마루에 얹혀 신세만 지는 것도 부끄러운데 여비조차 구할 길이 없으니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지요.

능소는 그런 박현수의 속마음을 단박에 알아챘습니다. 능소는 조용히 제 방으로 들어가 낡은 궤짝 밑바닥을 열었습니다. 그곳에는 아버지가 떠난 뒤 여러 해 동안 밤을 지새우며 길쌈을 해 모아둔 소중한 쌈짓돈이 들어있었습니다. 훗날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따뜻한 새 옷 한 벌 지어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려 아껴둔 돈이었지요.

능소는 망설임 없이 무명 천에 싼 엽전 꾸러미를 들고 나와 박현수의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선비님, 이것을 챙겨 속히 길을 떠나십시오.”

박현수는 깜짝 놀라 손을 뒤로 뺐습니다.

“낭자, 이것이 어떤 돈인데 내게 준단 말이오? 낭자가 피땀 흘려 모은 귀한 삯돈을 내가 어찌 붓값과 밥값으로 쓸 수 있겠소! 받을 수 없소.”

능소가 단호하게 박현수의 도포 자락에 주머니를 쥐여주며 말했습니다.

“뜻을 품은 선비가 노잣돈이 없어 시험장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평생의 한이 되지 않겠습니까? 선비님이 품은 큰 뜻을 펴시는 것이 곧 저를 위하는 길입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어서 한양으로 올라가십시오.”

박현수는 능소의 깊은 배려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는 돈주머니를 품에 소중히 넣고는 능수버들 가지를 한 번 쳐다보고, 다시 능소의 얼굴을 눈에 새기듯 바라보았습니다.

“내 반드시 급제하여 이 길로 돌아오겠소. 하늘이 무너져도 낭자와의 약조를 잊지 않을 것이오.”

박현수는 큰 절을 올리듯 고개를 숙이고는 한양을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시름에 잠긴 박현수의 모습
박현수에게 엽전 꾸러미를 쥐여주는 능소
한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박현수

장원급제와 형판의 청혼

한양에 도착한 박현수는 시험장에서 능소의 정성을 떠올리며 붓을 들었습니다. 한 글자 한 획마다 정성을 쏟아부었고, 그의 거침없는 문장과 빼어난 식견은 시관들을 감탄케 하였지요. 마침내 방이 붙는 날, 박현수의 이름이 식년시 문과 장원의 자리에 당당히 올랐습니다.

어사화를 머리에 꽂고 거리를 행차하자 온 도성의 사람들이 젊고 총명한 신진 관료를 칭송했습니다. 그 명성을 들은 조정의 고관인 형조판서가 박현수를 자신의 대감집으로 불렀지요.

형판은 술상을 차려놓고 박현수의 손을 잡으며 흡족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박 수찬, 자네의 문장과 기개가 실로 비범하이. 내 여식을 자네에게 주어 사위로 삼고 싶네. 내 집안과 연을 맺는다면 조정에서 자네 앞길은 탄탄대로가 될 걸세. 어떠한가?”

권세 높은 형판의 사위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부러워할 출셋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박현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읍을 하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대감의 크나큰 후의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감사하오나, 소생에게는 이미 목숨을 빚지고 백년가약을 맺은 여인이 있습니다.”

형판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의아해했습니다.

“어느 명문가의 규수이기에 내 청을 거절한단 말인가?”

“지체 높은 가문의 여인이 아닙니다. 도적에게 맞아 길바닥에 쓰러졌던 미천한 저를 살려내고, 길쌈 삯을 털어 과거 길을 열어준 천안삼거리 주막의 능소라는 처자입니다. 사내가 곤궁할 때 맺은 신의를 저버리고 부귀영화를 좇는다면, 어찌 백성을 다스리는 벼슬아치라 하겠습니까.”

형판은 젊은 선비의 꺾이지 않는 절개와 신의에 탄복하여 더는 강요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과거 시험장에서 붓을 드는 박현수
방각 앞에서 장원급제를 확인하는 박현수
혼인 청혼을 거절하는 박현수

삼거리 주막으로 달려온 신랑

하지만 천안삼거리에서는 엇갈린 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박현수가 장원급제했다는 소식은 삼남대로를 타고 내려왔으나, 곧이어 “박 선비가 한양의 세도가 사위가 되어 삼거리 주막 처자는 까맣게 잊었다더라” 하는 거짓 풍문이 먼저 퍼졌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도 능소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식음을 전폐하고 문밖을 바라보며 아버지를 기다리던 그리움에 선비에 대한 걱정까지 겹쳐, 마침내 능소는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높은 열에 들떠 신음하면서도 능소는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소리에 연신 눈을 떴지요.

그때였습니다. 삼거리 고갯길 너머에서 한 무리의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어사화를 꽂은 박현수가 말을 타고 단숨에 삼례 주막 마당으로 들이닥친 것이지요. 박현수는 말에서 뛰어내려 곧장 능소가 누워 있는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능소 낭자! 내가 왔소! 약속대로 급제하여 돌아왔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문을 연 박현수의 목소리에 능소가 번쩍 눈을 떴습니다. 초췌해진 능소의 손을 부여잡은 박현수는 품속에서 교지를 꺼내 보이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오는 길에 낭자가 앓아누웠다는 험한 헛소문을 듣고 말을 쉬지 않고 달렸소. 낭자의 정성이 나를 살렸는데, 내가 어찌 낭자를 잊겠소!”

박현수의 진심 어린 목소리에 능소의 가슴을 짓누르던 응어리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지극한 정성과 반가움 덕분이었을까요, 능소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얼굴에는 다시 화사한 혈색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방 안에 누워있는 지친 능소
삼례 주막으로 말을 타고 들이닥치는 어사화 꽂은 박현수
능소의 침상 곁에서 교지를 보이는 박현수

능수버들 아래 울려 퍼진 흥타령

마침내 천안삼거리 삼례 주막 앞마당에서 떠들썩한 혼례판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가 꽂아두고 떠났던 능수버들은 어느새 굵은 기둥을 드리운 큰 나무가 되어 두 사람의 혼례청 위에 푸른 차일을 쳐주었지요.

사모관대를 차려입은 박현수와 고운 족두리를 쓴 능소가 버드나무 아래에서 마주 서서 백년가약의 잔을 나누었습니다. 주막 주모는 물론이고 한양과 삼남을 오가던 길손들,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모여 마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남루한 나그네를 귀하게 돌보아 장원급제 선비로 떠나보낸 능소의 어진 마음과,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천리 길을 달려와 은혜를 갚은 박현수의 곧은 뜻에 하객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지요.

흥이 오른 하객들이 장구를 치고 박수를 치자, 신랑과 신부도 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마당 한가운데로 나와 춤을 추었습니다. 바람결에 부드럽게 휘어지는 능수버들 가지 사이로 노랫가락이 절로 터져 나왔지요.

“천안삼거리 흥〜 능수나 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치여나졌구나 흥〜”

오랜 기다림과 고난을 이겨내고 참된 신의를 지킨 두 사람의 환한 웃음소리가 삼거리 세 갈래 길 위로 멀리멀리 퍼져나갔답니다. 훗날 사람들은 천안삼거리를 지날 때마다 바람에 춤추는 능수버들을 바라보며, 정성을 다해 사람을 대하고 약속을 지켰던 능소와 박현수의 어진 이야기를 따뜻하게 떠올리곤 했습니다.

능수버들 아래서 혼례 잔을 나누는 두 사람
하객들과 함께 기쁘게 춤추는 신랑 신부

천안삼거리의 역사적 배경과 전설

천안삼거리는 조선시대에 한양과 경상도, 전라도로 통하는 삼남대로의 분기점으로, 충청남도 천안시 삼룡동 325-8번지에 위치한 유서 깊은 길목이다. 조선시대의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을에서 6리 떨어진 곳에 ‘삼기원(三岐院)’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예로부터 교통과 여행의 중심지로서 많은 사람이 오갔음을 보여준다.

이곳에는 나그네들의 발길이 머무는 길목의 풍경과 함께 ‘천안삼거리 흥〜 능수나 버들은 흥〜’이라는 흥타령, 그리고 삼거리에 능수버들을 심은 사연을 담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전해지는 이야기(능소 설화)에 따르면, 조선시대 중기 군정 유봉서가 변경의 수자리로 떠나며 삼례 주막에 어린 딸을 맡기고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훗날 자란 딸 ‘능소’가 도적에게 털리고 쓰러진 선비 박현수를 돌봐 인연을 맺고, 과거에 급제한 박현수와 혼례를 올릴 때 하객들과 함께 흥타령을 부르며 춤을 추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조선시대 유교 이념 아래 형성된 열녀설화의 성격을 가지며, 조선시대 중엽에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주막 마당과 능수버들의 풍경을 담은 사진
여행 도구와 짚신이 놓인 전통 그릇의 모습

오늘날의 천안삼거리

천안삼거리는 과거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중요한 분기점이자 교통의 요충지로서 역사적 기억을 간직한 장소로 전해오고 있다.

현대적인 유리창 너머로 거리가 보이는 미니멀한 카페 풍경

역사적 사실과 전설의 경계

천안삼거리가 한양과 경상도, 전라도를 잇는 삼남대로의 분기점이라는 사실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삼기원’ 기록이 존재한다는 것은 문헌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다. 반면, 유봉서가 버드나무를 심은 사연, 능소와 박현수의 만남과 혼례, 그리고 흥타령의 구체적인 유래 과정 등은 조선시대 중엽에 형성된 전설 및 설화 전승의 영역이다. 따라서 전설 속 세부 줄거리나 대화 내용은 문헌상 확정된 역사적 사실과 구분하여 이해해야 한다.

관련 장소

천안삼거리
충청남도 천안시 삼룡동 325-8번지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분기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