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천강 술샘의 비밀과 마음을 나눈 한 잔

강원도 영월 주천강을 따라 전해지는 주천석 설화와 양반에게는 청주, 상민에게는 탁주가 나왔다는 술샘의 흥미로운 지명 유래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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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주연에서 영월의 술샘까지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는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 곁으로 오래된 이야기가 깃든 고장이 있습니다. 아득한 고구려 시절에는 이곳을 술못이라는 뜻의 ‘주연(酒淵)’이라 불렀고, 훗날 신라 경덕왕 때에 이르러서는 술이 솟는 샘이라는 뜻을 담아 ‘주천(酒泉)’이라 고쳐 불렀다고 하지요.

마을 한편에는 ‘주천석(酒泉石)’이라 불리는 신기한 바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같은 오랜 기록을 살펴보면, 본래 이 바위는 돌구유처럼 생겼는데 매일 물을 길러 가는 것이 몹시 귀찮았던 관원이 아예 현청 안으로 옮기려 드는 순간 마른하늘에서 천둥과 벼락이 내리쳐 세 조각으로 갈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 갈라진 돌 중 하나가 지금껏 남아 있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이 샘을 두고 ‘술샘’이라고도 불렀는데, 본래는 길을 가던 길손들이 봇짐을 내려놓고 편히 목을 축이며 쉬어가던 곳이라 하여 ‘쉴샘’이라 부르던 이름이 입에서 입을 거치며 ‘술샘’으로 소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집니다. 이 신기한 샘가에는 대대로 사람들의 입을 타고 내려오는 아주 흥미로운 설화 한 토막이 숨어 있답니다.

주천강변에 놓인 오래된 바위 전경

양반에게는 청주, 상민에게는 탁주

그 오랜 전승에 따르면, 주천리의 샘에서는 사시사철 참으로 기이한 술이 솟아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샘물에는 별난 재주가 하나 있었습니다. 갓을 쓰고 도포를 두른 양반이 바가지를 들이밀면 맑고 향긋한 청주가 찰랑찰랑 솟아나고, 땀 흘려 일하는 평범한 상민이 다가가 물을 뜨면 텁텁하고 구수한 탁주가 뽀얗게 고였다는 것이지요.

마을에서 부지런히 밭을 갈고 농사를 짓던 젊은이 돌쇠는 땀을 훔칠 때마다 이 소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흙 묻은 바지춤을 털어내며 샘가에 쭈그리고 앉아 바가지를 담그면, 여지없이 걸쭉한 탁주가 솟아올라 목을 축여주곤 했습니다. 시원하고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고마운 술이었지만, 돌쇠의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자라났습니다.

“내 평생 저 맑디맑다는 청주 한 모금 못 마셔보고 이 흙바닥에서 늙어갈 수는 없지.”

돌쇠는 낮에는 괭이를 쥐고 밭을 일구면서도 품속에 낡은 천자문을 품고 다녔고, 밤이 깊어 이웃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도 등잔불 아래에서 눈을 비벼가며 글을 읽었습니다. 과거 시험에 급제해 당당한 벼슬아치가 되고 진짜 양반이 된다면, 저 샘물도 마침내 제게 맑고 투명한 청주를 내어주리라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샘가에서 바가지로 탁주를 뜨는 돌쇠

마을 사람들의 엇갈린 말

과거를 보러 떠나기 전날, 돌쇠는 마지막으로 목을 축이고자 샘터를 찾았습니다. 마침 샘터 너럭바위에는 동네 어르신들과 이웃들이 옹기종기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요. 장돌뱅이 박 서방이 땀을 닦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 글쎄 이웃 마을 김 서방이 양반 도포를 어디서 빌려 입고 수염까지 그럴싸하게 붙이고 갔잖은가?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바가지에는 뽀얀 탁주만 그득 차오르더란 말이지! 샘물이 사람 뼈다귀 속 근본까지 꿰뚫어 보는 게 틀림없어.”

그러자 곁에서 나물을 다듬던 아주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딴소리를 얹었습니다.

“근본은 무슨 얼어 죽을 근본이유! 저번에 길 가던 선비 양반도 마음씨를 고약하게 쓰고 욕심을 부리며 연거푸 서너 잔을 퍼마시려 드니까, 금세 물이 흐려지며 탁주로 변해버렸소. 샘물은 옷차림이나 신분이 아니라 부정을 타느냐 마느냐를 따지는 법이지.”

사람들의 말이 저마다 어긋나자 돌쇠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뼈속까지 흐르는 신분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가짐의 맑기를 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돌쇠는 가슴을 펴며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남의 옷을 훔쳐 입은 흉내가 아니라, 내가 진짜 글을 깨쳐 과거에 당당히 급제한다면 샘물도 어찌하지 못할 게다.’

이야기를 나누는 박 서방과 만돌 어르신

과거 급제와 의기양양한 귀향

돌쇠의 집념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한양으로 올라가 몇 해 동안 뼈를 깎는 정진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벼슬길이 열리는 과거 시험에 당당히 급제한 것이었습니다. 머리에는 어사화를 꽂고 몸에는 번듯한 비단 관복을 차려입은 돌쇠는 위풍당당하게 고향 영월 주천리로 돌아왔습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나와 두 손을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흙투성이로 밭을 매던 돌쇠가 고을의 자랑스러운 관원이 되어 돌아왔으니 온 동네의 잔치나 다름없었지요.

“돌쇠가 해냈어! 우리 마을에서 진짜 벼슬 양반이 났다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걷는 돌쇠의 가슴은 벅차올랐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발걸음을 옮긴 곳은 잔칫상이 차려진 집이 아니라, 마을 언덕배기의 주천 샘터였습니다. 수없이 상상해왔던 그 순간, 맑고 투명하여 잔 바닥이 훤히 비친다는 청주를 제 손으로 당당히 길어 올릴 때가 온 것입니다.

돌쇠는 옷자락을 펄럭이며 조심스레 무릎을 굽히고 표주박을 샘물 깊숙이 밀어 넣었습니다.

관복을 입고 무릎을 굽힌 돌쇠

바가지에 고인 뽀얀 탁주

찰랑, 소리와 함께 표주박이 차올랐습니다. 돌쇠는 가슴을 쿵쾅거리며 박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습니다. 그러나 박 안을 들여다본 돌쇠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차갑게 굳어버렸습니다.

표주박에 그득 담긴 것은 은은한 향을 풍기는 맑은 청주가 아니었습니다. 예전 땀 흘리며 밭을 갈다 마시던 그 걸쭉하고 뽀얀 탁주, 바로 막걸리였습니다.

“이, 이럴 리가 없다. 내가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있는데……!”

당황한 돌쇠는 박을 비워내고 다시 깊숙이 손을 들이밀었습니다. 맑은 기운을 품고 차오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두 번째로 건져 올린 박에도 역시 뿌옇고 시큼털털한 탁주만이 찰랑거릴 뿐이었습니다.

뒤따라온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돌쇠의 귓전을 날카롭게 찔렀습니다.

“아니, 돌쇠가 급제를 했는데도 여전히 탁주가 나오네?”

“샘물 눈에는 여전히 밭 매던 상민 돌쇠로 보이는 건가?”

그 말들이 마치 자신의 고된 세월과 피땀 어린 노력을 비웃는 칼날처럼 느껴졌습니다. 돌쇠의 얼굴이 수치심과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내가 이 술 한 잔을 얻어 마시려 그 긴 세월 밤잠을 설쳤단 말인가. 억울함과 배신감이 치밀어 올라 눈앞이 하얘졌습니다.

표주박에 담긴 탁주를 바라보는 돌쇠

치켜든 돌과 만돌 어르신의 만류

“요망한 샘물 같으니! 양반과 상민을 가려낸다는 말도 다 거짓이고, 사람의 노력을 능멸하는 괴변일 뿐이로구나!”

이성을 잃은 돌쇠는 길섶에 놓인 커다란 바윗덩이를 두 손으로 번쩍 치켜들었습니다. 이 엉터리 샘을 영원히 메워버려 다시는 누구도 마시지 못하게 부숴버리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기겁하여 뒤로 물러서는 찰나, 백발이 성성한 만돌 어르신이 지팡이를 짚고 앞으로 나섰습니다.

“돌쇠야, 멈추거라! 네 성급한 노여움이 화를 부를까 두렵구나.”

만돌 어르신은 돌쇠를 가로막아서며 묵직한 목소리로 타일렀습니다.

“네 주천석의 옛일을 정녕 잊었더냐?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실려 전해오지 않더냐. 먼 옛날, 물 길러 다니기 귀찮다고 제 편하자고 이 구유 돌을 관아 안으로 옮기려 했던 관원이 어찌 되었는지 말이다. 하늘에서 벼락이 치고 천둥이 울려 돌이 셋으로 쪼개지고 말았느니라. 제 욕심과 오만으로 샘을 함부로 다루려 드는 자에게 자연이 내린 준엄한 경고였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벼락 맞은 바위 이야기와 어르신의 서슬 퍼런 꾸짖음에 돌쇠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치켜든 바위의 무게보다 어르신의 한마디가 가슴을 더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바위를 번쩍 들어 올리는 돌쇠
돌쇠를 말리기 위해 나서는 만돌 어르신

‘쉴샘’이 품은 진짜 마음

돌쇠는 쿵 소리를 내며 들고 있던 바위를 내려놓았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붉어진 눈으로 어르신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르신, 저는 그저 인정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뼈를 깎아 글을 읽고 당당히 급제하여 양반이 되었는데, 왜 이 샘은 저를 여전히 거친 탁주나 마실 상민으로만 대우한단 말입니까? 제 노력이 정녕 부질없는 짓이었단 말입니까?”

만돌 어르신은 흙투성이가 된 돌쇠의 손을 가만히 쥐어주었습니다. 관복 소매 아래로 드러난 거칠고 굳은살 박인 손이었습니다.

“돌쇠야, 이 샘의 본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느냐? 술이 나와 술샘이기 전에, 험한 고개를 넘던 길손이며 밭일하다 지친 농사꾼이며 누구든 봇짐을 풀고 목을 축이던 ‘쉴샘’이었느니라. 청주가 맑고 귀하다 한들, 허기지고 지친 백성의 빈속을 달래주고 힘을 북돋워 주는 것은 걸쭉하고 따뜻한 이 탁주 한 사발이 아니더냐.”

어르신은 돌쇠가 떠놓았던 바가지를 들어 한 모금 달게 들이켰습니다.

“샘은 너를 무시한 것이 아니다. 높은 벼슬을 얻었다 하여 고향 사람들과 등을 지고 귀한 청주만 홀로 탐하는 차가운 양반이 되지 말고, 이 텁텁한 막걸리처럼 이웃의 땀을 씻어주고 배고픔을 감싸 안는 너른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겠느냐.”

어르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돌쇠의 닫힌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맑은 술 한 잔으로 신분을 뽐내려 했던 자신의 속 좁은 욕심이 비로소 부끄러움으로 밀려왔습니다.

바위를 내려놓는 돌쇠
돌쇠의 손을 쥐어주는 만돌 어르신

잔을 부딪치며 나눈 온기

돌쇠는 굳어 있던 어깨를 천천히 내렸습니다. 관복 소매를 걷어붙이고 다시 샘 앞으로 다가선 돌쇠의 얼굴통에는 서늘한 노여움 대신 수줍고 따스한 미소가 번져 있었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이 고마운 물줄기를 제 오기 때문에 망쳐버릴 뻔했군요.”

돌쇠는 표주박을 들어 뽀얗게 차오르는 탁주를 듬뿍 퍼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맨 먼저 지팡이를 짚고 선 만돌 어르신께 공손히 두 손으로 건넸습니다.

“어르신, 한잔 드십시오. 제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을 오늘 받았습니다.”

“허허, 참으로 달고 시원하구나!”

이어 돌쇠는 곁에 서 있던 박 서방과 동네 아낙들, 코흘리개 아이들의 어머니들에게도 바가지를 부지런히 날랐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손뼉을 치며 모여들었고, 굳어 있던 샘터는 순식간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다정한 잔칫터로 변했습니다. 누구는 바가지째 들이켜고, 누구는 흙 묻은 사발을 내밀며 시원한 탁주를 나누어 마셨습니다.

양반이 되었느니 상민으로 남았느니 따지는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오직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내고 서로를 보듬는 넉넉한 웃음소리만이 가득했습니다.

표주박으로 탁주를 뜨는 돌쇠
만돌 어르신께 탁주를 건네는 돌쇠
샘터에 모여 웃음 짓는 마을 사람들

주천강 맑은 물에 흐르는 정

비록 세월이 흘러 전설 속의 샘물은 땅속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지만, 영월 주천면을 감싸 안고 흐르는 주천강의 물결은 여전히 그날의 지혜를 품은 채 유유히 흘러갑니다.

벼락을 맞고도 자리를 지킨 주천석처럼, 돌구유를 탐내던 욕심은 깨어지고 오직 길손들이 쉬어가던 넉넉한 쉼의 마음만이 남아 마을의 이름으로 살아 숨 쉬고 있지요. 맑은 청주를 자랑하기보다 텁텁한 탁주 한 사발을 이웃과 기껍게 나눌 줄 알았던 돌쇠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주천강 물소리를 따라 지금도 다정하게 귓가에 맴돕니다.

혹여 주천 땅을 지나다 시원한 강바람을 마주하게 되거든 기억해 보세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곁에 선 사람의 땀방울을 알아보고 기꺼이 함께 나누는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초록 언덕과 주천강의 평화로운 풍경

주천강과 주천석, 그리고 지명에 담긴 이야기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의 주천강과 이 일대에 전해지는 지명 및 설화는 오랜 역사적 기록과 민간 전승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아득한 고구려 때 이곳의 지명은 ‘주연(酒淵)’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에 이르러 ‘주천(酒泉)’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본래 주천석(酒泉石)이 돌구유처럼 생겼는데, 매일 물 길러 가는 것이 귀찮았던 관원이 현청으로 옮기려 하는 순간 천둥과 벼락이 쳐서 바위가 세 개로 갈라졌으며 그중 하나가 이 돌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주천석과 관련된 이야기는 조선 후기 신분제의 변동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야외에 놓인 전통 돌구유 형태의 바위
청주와 탁주가 담긴 그릇이 놓인 탁자

오늘날의 주천면과 전승의 의미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 전해지는 ‘술샘’이라는 명칭은, 샘을 중심으로 길 가던 사람들이 모여 쉬던 곳이라는 의미의 ‘쉴샘’에서 ‘술샘’으로 변이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인천광역시 영종도나 경상북도 청도군 등 다른 지역에서도 한 사람이 딱 한 잔씩만 먹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 혹은 중이 여러 잔을 마셔서 부정을 타 술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유사한 전설 유형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주천강 일대는 이러한 지명 유래와 옛 설화의 발자취를 간직한 공간으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현대적인 카페 인테리어와 유리잔

역사적 사실과 전설의 경계

본문에 등장하는 지명 변경(고구려 ‘주연’에서 신라 경덕왕 때 ‘주천’으로의 변화) 및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주천석 관련 내용은 문헌과 사실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사시사철 양반에게는 청주가 나오고 상민에게는 탁주가 나왔다는 주천 설화의 구체적인 내용, 과거에 급제한 젊은이 돌쇠가 샘을 막아버렸다는 이야기, 그리고 ‘쉴샘’에서 ‘술샘’으로의 음운 변이 추정 등은 전설 및 구비 전승의 영역에 속합니다. 문헌에 기록된 전설과 전승담은 역사적 사실 그 자체로 환원될 수 없으며, 허구적 서사와 민속적 상상이 결합된 이야기로 이해해야 합니다.

관련 장소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