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동짓밤의 붉은 새알심

밤이 가장 긴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 먹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동지첨치' 풍속과 여덟 살 분이의 따뜻한 겨울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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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다시 힘을 얻는 작은설

일 년 스물네 개 절기 가운데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 바로 동지(冬至)랍니다. 햇살이 가장 짧게 머물다 떠나는 날이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이날을 기점으로 줄어들던 햇볕이 다시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지요. 글쎄요, 옛사람들은 동지를 태양이 새로운 기운을 얻어 되살아나는 뜻깊은 날로 여겼답니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또는 ‘작은설’이라 부르며 설날 다음가는 큰 명절로 대접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지요. ‘동지를 지나야 진짜 한 살을 더 먹는다’, 혹은 ‘동지팥죽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얻는다’라는 ‘동지첨치(冬至添齒)’의 말도 함께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러니 나이를 얼른 먹고 싶어 몸이 달아오른 어린아이들에게는 이 작은설의 붉은 팥죽 냄새만큼 손꼽아 기다려지는 것도 없었지요.

눈 쌓인 마을 위로 남색 겨울 황혼 하늘과 낮게 뜬 해가 보이는 풍경

호랑이 장가가는 날의 조급한 발걸음

창호지 문틈으로 차가운 새벽바람이 매섭게 들이치던 아침이었습니다. 여덟 살 분이는 눈을 뜨자마자 이부자리를 박차고 부엌으로 내달렸습니다.

“할머니! 팥죽 다 쑤셨어요? 저 이제 팥죽 먹고 아홉 살 되는 거지요?”

부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화로를 살피던 할머니는 털썩 문을 열어젖히는 손주를 보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입김이 하얗게 흩어질 만큼 추운 날이었지요.

“요 녀석아, 발 시리다. 얼른 덧버선이라도 꿰차고 나오너라. 날이 얼마나 찬지 모른단다. 옛말에 날이 춥고 밤이 쥐죽은 듯 길어 호랑이가 장가를 간다고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 부르는 동지인데, 팥죽이 어디 뚝딱 도깨비 방망이처럼 나온다더냐?”

“진짜요? 밖이 그렇게 추워요? 그럼 호랑이가 장가가기 전에 팥죽부터 얼른 먹어야지요!”

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가마솥 뚜껑 쪽을 기웃거렸습니다. 동네 형들처럼 어른스럽게 심부름도 하고 목소리도 굵어지고 싶은 마음에, 분이의 머릿속에는 오직 팥죽 그릇을 비우고 아홉 살이 되는 생각뿐이었지요.

노란 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은 어린이가 부엌으로 달려가는 모습

붉은 팥과 하얀 버선

부엌에서는 이미 달콤하고 구수한 팥 삶는 내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미리 불려둔 붉은 팥을 큰 솥에 푹 무르게 고아 체에 밭쳐 거르는 중이었지요. 곁에는 찹쌀가루를 익반죽해 둥글둥글 빚어놓은 하얀 새알심들이 바구니 가득 놓여 있었습니다.

“할머니, 팥죽은 왜 꼭 붉은 팥으로만 쑤어요? 콩죽이나 쌀죽은 안 돼요?”

분이가 새알심 하나를 슬그머니 만지작거리며 묻자, 할머니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먼 옛날에 공공씨라는 사람에게 바보 아들이 하나 있었단다. 그런데 그 아들이 하필 동짓날에 세상을 떠나 역질 귀신이 되었지 뭐냐. 온 동네에 몹쓸 돌림병을 옮기고 다녔는데, 그 귀신이 유독 붉은 팥을 무서워했단다. 그래서 붉은 팥죽을 쑤어 역질 귀신을 쫓고 집안을 깨끗하게 지키는 거란다.”

할머니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부엌문 한쪽에 놓아둔 바느질 광주리를 집어 들었습니다. 광주리 안에는 며칠 밤을 꼬박 새워 지은 하얀 무명 버선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지요.

“죽만 쑤면 끝이 아니란다. 동짓날에는 어른들께 인사를 올리며 버선을 선물하는 ‘동지헌말’도 챙겨야 하고, 아랫집 외로운 삼촌 댁에도 한 켤레 보내야 하니 갈 길이 바쁘다, 바빠.”

초록 저고리를 입은 할머니가 부엌에서 붉은 팥을 체에 밭쳐 거르는 모습

타닥거리는 솥바닥과 엇갈린 손길

할머니가 이웃집에 버선감을 잠깐 전하러 마당을 가로지른 사이, 분이는 조바심이 났습니다. 마루에 걸터앉아 기다리기에는 동짓날 해가 너무 더디게 떠오르는 것 같았지요. 솥 안에서는 팥물이 뽀글뽀글 거품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내가 얼른 저어서 다 끓여놓으면, 할머니도 좋아하시고 나도 팥죽을 얼른 먹겠지?’

분이는 커다란 나무 주걱을 두 손으로 쥐고 솥 안으로 쑥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해 팥물을 휙휙 휘젓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걸쭉해진 팥물은 생각보다 묵직했고, 성급하게 센 불길 위에 올려둔 솥바닥에서는 이내 ‘타닥!’ 하는 불길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 냄새가 왜 이러지?”

알싸한 탄내가 연기와 함께 피어올랐습니다. 당황한 분이가 주걱을 빼려다 그만 솥전을 세게 쳐 팥물이 솥 밖으로 튀었고, 화들짝 놀라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때 부엌문을 열고 들어선 할머니와 눈이 딱 마주쳤답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짓이냐!”

할머니가 급히 달려와 아궁이 장작을 밖으로 긁어냈습니다. 분이는 솥바닥을 태워 먹었다는 부끄러움과 혼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술을 바르르 떨었지요.

노란 저고리를 입은 어린이가 커다란 가마솥을 나무 주걱으로 저어주는 모습

거친 손끝이 품은 온기

분이는 눈을 질끈 감고 불호령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매서운 호통 대신 들려온 것은 깊은 한숨 소리였습니다.

할머니는 솥 안을 조심스레 살피더니 주걱으로 눌어붙지 않은 윗물을 다른 냄비로 가만히 옮겨 담았습니다. 다행히 팥죽 전체가 타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할머니는 털썩 주저앉아 굳은살이 박인 거친 손을 바지춤에 문질렀습니다. 손끝마다 바늘에 찔려 붉게 물든 자국들이 역력했답니다.

“분이 너는 그저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그리도 급했더냐?”

할머니의 젖은 목소리에 분이는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웅얼거렸습니다.

“죄송해요, 할머니…… 빨리 먹고 아홉 살이 되고 싶어서요……”

“나이를 먹는다는 건 말이다, 그저 숟가락 하나 비운다고 덜컥 어른이 되는 게 아니란다. 동짓날 긴긴 밤에 이 붉은 팥을 삶고 버선을 깁는 건, 모진 겨울바람에 식구들 몸 상하지 말고 이웃들 발 시리지 말라고 비는 마음이야. 내 손이 트고 눈이 침침해도 그 정성을 들이는 건데, 죽이 타버리면 올겨울 우리 집 온기는 어디서 찾겠누.”

할머니의 트튼 손등을 바라보던 분이는 목구멍이 꽉 메어왔습니다. 할머니가 밤마다 등잔 밑에서 바느질을 하던 것도, 이 매서운 새벽부터 솥 앞을 떠나지 못한 것도, 모두 자신과 집안의 무탈함을 위한 고단한 노동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입니다.

거친 손을 바지춤에 문지르는 할머니와 이를 바라보는 어린이의 모습

솔가지 끝에 실은 붉은 마음

분이는 벌떡 일어나 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할머니, 제가 도울게요. 팥죽 젓는 것 말고, 다른 건 제가 잘할 수 있어요!”

할머니는 눈을 깜빡이며 손주를 바라보더니,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습니다. 새로 불을 지펴 정성스레 뜸을 들인 팥죽은 곱고 윤기 나는 붉은빛으로 되살아났고, 새알심들도 둥실둥실 떠올랐지요.

할머니는 대접에 뜨거운 팥죽을 덜어 담고는 마당 구석에서 솔가지 한 묶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래, 그럼 분이가 이 솔가지를 쥐어보려무나.”

분이는 푸른 솔가지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붉은 팥죽을 듬뿍 적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뒤를 따라 큰 걸음으로 대문 앞까지 나아갔습니다.

“나쁜 귀신은 물러가고, 우리 식구 다 건강하게 해주세요!”

분이는 솔가지를 털어 대문 기둥과 문 근처 흙벽에 붉은 팥죽을 힘차게 뿌렸습니다. 흙벽에 튄 붉은 방울들이 시린 겨울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지요. 단순히 장난삼아 하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탈 없이 넘기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분이의 작은 손끝에 오롯이 담겨 있었답니다.

겨울 조끼를 덧입은 어린이가 푸른 솔가지로 문 근처에 붉은 팥죽을 뿌리는 모습

나이 한 살과 따뜻한 버선 한 켤레

마당과 문간에 팥죽을 고루 뿌린 뒤, 두 사람은 따뜻한 아랫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상 위에는 뽀얀 김을 뿜어내는 팥죽 두 그릇이 놓여 있었지요. 숟가락으로 휘젓자 부드러운 새알심들이 동글동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자, 분이야. 네 나이 수대로 새알심을 아홉 개 세어 넣어두었다. 꼭꼭 씹어 먹거라.”

분이는 숟가락을 들어 뜨거운 팥죽을 호호 불어 넘겼습니다. 혀끝에 닿는 부드러운 팥의 단맛과 쫀득한 새알심의 맛이 가슴속까지 훈훈하게 데워주었지요. 분이는 팥죽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 앞에 공손히 앉았습니다.

“할머니, 동지하례 드려요. 올겨울 건강하셔야 해요.”

그리고는 아침나절 할머니 몰래 방 한구석에서 챙겨둔 하얀 무명 버선을 두 손으로 바쳤습니다. 할머니가 이웃에게 주려고 지어둔 것 중, 분이가 고사리손으로 곱게 접어둔 할머니의 버선이었답니다.

할머니는 깜짝 놀라 버선을 받아 들더니, 손주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습니다.

“우리 분이가 이제 팥죽만 먹은 게 아니라, 진짜 속이 깊은 나이 한 살을 더 먹었구나.”

문밖에서는 여전히 ‘호랑이 장가가는 날’의 매서운 칼바람이 쌩쌩 불어왔지만, 방 안 가득 퍼진 팥죽의 훈기와 두 사람이 나눈 따스한 온기는 그 어느 긴긴 동짓밤도 넉넉히 녹여낼 만큼 깊고 포근했답니다.

방 안에서 할머니에게 하얀 무명 버선을 두 손으로 공손히 드리는 어린이의 모습

동지의 정의와 작은설의 의미

동지(冬至)는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남회귀선) 곧 황경 270도의 위치에 있을 때이며, 양력 12월 22일이나 23일 무렵에 듭니다. 일 년 스물네 개 절기 가운데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 또는 ‘작은설’이라 하였으며, 태양의 부활이라는 큰 의미를 지닌 설 다음가는 작은설로 대접하였습니다.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동지첨치(冬至添齒)의 풍속이 전해집니다. 또한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하여 동지를 ‘호랑이장가가는날’이라고도 부릅니다.

동지의 역사적 배경과 문헌 기록

중국 주나라에서는 이날 생명력과 광명이 부활한다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로 삼았고, 당나라 선명력에도 동지를 역의 시작으로 보았으며, 『역경』 복괘에 해당하는 11월을 자월이라 해 동짓달을 일년의 시작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신라에 이어 고려시대에도 당의 선명력을 쓰다가 충선왕 원년(1309) 원의 수시력으로 바뀔 때까지 사용하였으며, 충선왕 이전까지 동지를 설로 지낸 것으로 짐작됩니다. 한편, 구미 각국의 성탄절(크리스마스)도 초기 기독교가 미트라교의 동지 축제일이나 태양 숭배 풍속을 이용해 예수 탄생을 기념하게 한 것이며, 로마인의 새턴네리아 축제 중 25일이 동지 뒤 태양 부활일로 기념된 날이었습니다.

궁중과 민간의 주요 풍속 및 음식

동짓날에는 붉은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찹쌀로 새알심을 만들어 넣어 끓인 동지팥죽을 먹습니다. 공공씨에게 바보 아들이 있었는데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 귀신이 되었고, 이 귀신이 붉은 팥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동짓날에 붉은 팥죽을 쑤어서 물리친다는 전승이 전해집니다. 이에 따라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주술 행위를 하거나,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거나 이웃이 상을 당했을 때 부조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또한 뱀 ‘사(蛇)’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 잡귀를 막는 속신인 동지부적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동지하례를 행하며 버선을 선물하는 ‘동지헌말’ 풍속도 전합니다. 궁중과 관청에서는 내의원에서 소의 다리를 고고 백강, 정향, 계심, 청밀 등을 넣어 만든 ‘전약’을 만들어 진상 및 각 관청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외에 관상감에서 만들어 궁에 바치고 백관에게 나누어 준 황장력·청장력·백장력 등의 달력과, 제주목에서 진상하여 종묘에 바치고 신하들에게 나누어 준 귤·유자·귤감 등이 중요한 객체로 쓰였습니다.

국가 및 궁중 의례로는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잔치를 베푸는 동지회례연, 해마다 중국에 예물을 갖추어 파견하는 동지사 파견, 성균관과 사학 유생들에게 시험을 보고 귤을 나누어 주는 황감제, 팥죽을 사당에 먼저 올리고 집안 여러 곳에 놓아두었다 먹는 동지고사, 종묘 및 경사대부 집에서 청어를 올리는 청어 천신, 절에 다녀오며 집에서 팥죽을 쑤어 먹는 동지불공 등이 행해졌습니다.

지역별 풍속의 다양성

동지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풍속적 차이를 보입니다. 경기도에서는 사당에 팥죽으로 차례를 지낸 다음 방, 마루, 장광 등에 한 그릇씩 놓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었습니다. 경상도에서는 팥죽을 쑤어 솔가지에 적셔 대문, 담벼락, 마당, 마을 입구 큰 고목에 뿌려 잡귀들의 동네 침입을 막았으며, 밀양 남지에서는 용이 땅을 갈아 이듬해 농사일을 징험하는 용갈이 풍속이 전합니다. 강원도에서는 팥죽의 새알심으로 찹쌀이나 수수쌀로 만든 ‘옹심’을 넣어 나이 수대로 먹었으며, 일꾼들은 팥죽 아홉 그릇을 먹고 나무 아홉 짐을 져야 한다고 전해졌고 날씨가 더워서 팥죽이 쉬면 이듬해 농사가 풍년이라고 여겼습니다. 충남 연기에서는 동지불공을 드리러 절에 다녀오며 집에서 팥죽을 쑤어 먹었고, 애기동지에는 팥시루떡, 노동지에는 팥죽, 중동지는 떡이나 팥죽 중 하나를 해 먹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충청도 홍주 합덕지에서는 연못의 갈라진 얼음 모양이 쟁기로 밭을 갈아놓은 것 같은 용갈이(龍耕) 현상이 나타나며, 갈라진 자취의 방향에 따라 이듬해의 풍흉을 징험하였습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동지의 풍속

오늘날에도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동지첨치 관념이 민간에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또한 동지 무렵의 연말연시가 되면 새로운 해의 달력을 주고받는 풍속이 여전하며, 집안의 안녕과 번창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낼 때 팥떡을 해 지내는 풍속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동료에게 새해 달력을 건네는 모습
가정집 주방 식탁 위에 정갈하게 놓인 팥시루떡

이야기 속 허구와 역사적 사실의 경계

제공된 창작 이야기 속 주인공 분이의 일상적 성격과 대화, 할머니와 부엌에서 나눈 대화 및 팥죽을 젓다가 태울 뻔한 주방 소동, 버선을 직접 챙겨 건네는 등의 세부적인 가족 일화는 문학적 창작에 해당합니다. 다만 동지가 밤이 가장 길고 태양이 부활하는 날이자 작은설로 불렸다는 점, 동지첨치와 ‘호랑이장가가는날’ 속신, 공공씨 아들의 역질 귀신 전승과 팥죽을 뿌리는 주술 행위, 동지헌말의 버선 선물 풍속 등은 기록된 역사 및 민속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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