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루 없는 도끼를 찾는 소성거사: 신라 승려 원효의 저잣거리 이야기

승려의 옷을 벗고 저잣거리에서 춤추던 소성거사 원효. 자루 없는 도끼를 외치던 그의 엉뚱한 물음 속에 담긴 깊은 뜻과 설화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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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복을 입고 저잣거리로 나온 승려

신라의 높은 절간이나 고요한 산속이 아니라,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터 한복판에 별난 옷차림을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신라의 승려 원효였지요. 617년부터 686년까지 신라에 살았던 원효는 불법을 널리 전파한 승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높은 누각에서 어려운 경전만 읊는 대신,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낮은 곳으로 직접 발을 디딘 것이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그는 승복을 벗어 던지고 평범한 백성들이 입는 속복으로 갈아입은 뒤, 스스로를 ‘소성거사’라 불렀답니다. 거룩한 체하지 않고 가장 낮고 작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겠다는 뜻이었어요. 머리에는 상투를 틀고 삼베옷을 걸친 채, 저잣거리 사람들의 웃음과 한숨이 뒤섞인 골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답니다.

삼베옷을 입고 신라 저잣거리로 걸어 들어가는 원효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 주겠는가

장터 모퉁이에서 나물을 팔던 바우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습니다. 웬 건장한 사내가 손뼉을 치며 장바닥 한가운데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장사를 하던 사람들도 저마다 짐을 내려놓고 웅성거리며 둘러섰습니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 주겠는가! 하늘 받칠 기둥을 깎겠노라!”

소성거사는 목청을 돋워 신기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구경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귓속말을 주고받았지요. 바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습니다.

“자루가 없는데 어떻게 도끼로 나무를 깎는다는 말이지? 저러다 장마당만 어지럽히는 것 아냐?”

도끼는 자루가 단단히 박혀 있어야 쓸모가 있는 법인데,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만 외치고 있으니 바우의 눈에는 그저 마을에 소동을 일으키려는 괴짜로만 보였답니다.

장터 중앙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소성거사와 당황한 바우

엉뚱한 물음과 당황한 발걸음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나둘 흩어지자, 소성거사는 눈을 반짝이며 바우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습니다. 흙 묻은 짚신 소리에 놀란 바우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지요.

“얘야, 네 바구니에는 오늘 장터의 온갖 수고가 다 담겼구나. 혹시 너는 알고 있느냐? 자루 없는 도끼가 어디에 쓰일지 말이다.”

불쑥 다가와 건넨 말에 바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저, 저는 나물만 파는 아이예요! 그런 이상한 물건은 몰라요!”

바우는 바구니를 와락 끌어안고는 휑하니 돌아섰답니다. 괜한 소리에 얽혀 곤욕을 치를까 두려워 허겁지겁 골목 안쪽으로 달아났지요. 뒤에서 껄껄 웃는 소성거사의 웃음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길게 따라왔습니다.

바우에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는 소성거사

골목길에서 터져 나온 다툼

골목 안쪽으로 숨어든 바우는 뜻밖의 소란을 마주했습니다. 좁은 길목에서 수레를 끌던 짐꾼과 독을 지고 가던 옹기장이가 서로 먼저 지나가겠다며 삿대질을 하고 있었지요. 길은 비좁은데 아무도 물러서려 하지 않으니, 뒤따르던 사람들의 짐까지 엉켜 골목이 꽉 막혀 버렸습니다.

“비켜서시오! 내 짐이 먼저 들어왔단 말이오!”

“무슨 소리요! 깨지기 쉬운 옹기를 지고 어찌 뒤로 물러서란 말이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골목의 공기도 팽팽해졌습니다. 바우가 그 틈을 비집고 지나가려다 그만 누군가의 팔꿈치에 부딪혀 나물 바구니를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바구니가 엎어지며 정성스레 다듬은 산나물이 흙먼지 위에 와르르 쏟아졌지요. 사람들의 고함에 묻혀 바우의 작은 탄식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도무지 엉킨 사람들을 말릴 수도, 쏟아진 나물을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답니다.

바구니가 엎어져 흙먼지 위에 쏟아진 산나물

나물을 주워 올린 거친 손

바우가 울상이 되어 주저앉으려는 찰나, 커다란 손 하나가 흙 묻은 나물을 조심스레 주워 올렸습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조금 전의 소성거사였지요. 소성거사는 옷자락을 걷어붙이고 바우 곁에 무릎을 꿇은 채 나물을 털어 바구니에 담아 주었습니다.

“마음이 급하면 발길이 엉키고, 욕심이 앞서면 길이 막히는 법이지.”

소성거사의 따뜻한 눈빛에 바우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여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까는 도망쳐서 죄송해요. 그런데 왜 아까부터 그런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며 다니셨어요?”

소성거사는 잔잔한 눈빛으로 골목의 소란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단단한 자루를 쥐고 남을 밀어내려고만 한단다. 제 손의 도끼자루만 믿고 서로를 겨누니 마주치는 곳마다 상처가 나지. 나 역시 그 단단한 껍데기를 어떻게 깨고 다가가야 할지 늘 가슴이 답답했단다. 그래서 자루를 버리고, 오직 함께 받쳐 들 큰 기둥을 깎을 마음이 있는지 물었던 게야.”

그제야 바우는 가슴 한구석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괴짜의 장난인 줄 알았던 기이한 외침이, 사실은 닫힌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싶어 던진 간절한 물음이었음을 깨달은 것이지요.

바우와 함께 쏟아진 나물을 줍는 소성거사

두 사람이 맞춘 손장단

바우는 흙을 툭툭 털어낸 바구니를 고쳐 쥐며 소성거사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거사님, 저 사람들의 굳은 마음도 그 노래로 풀 수 있을까요?”

소성거사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혼자 부르면 허공을 맴돌지만, 곁에서 박자를 맞춰 주면 노래는 길이 되는 법이란다.”

“그럼 제가 장단을 맞출게요!”

바우는 바구니를 내려놓고 빈 손바닥을 짝, 짝 마주쳤습니다. 소성거사가 다시금 맑고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뽑아 올렸지요. 바우는 좁은 골목길을 폴짝폴짝 뛰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습니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 주겠는가! 하늘 받칠 기둥을 깎겠노라!”

소성거사의 너털웃음과 바우의 낭랑한 목소리가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우자, 삿대질을 하던 짐꾼과 옹기장이도 어리둥절하여 손을 멈추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웃음으로 녹아내린 길목

바우는 짐꾼 아저씨의 소맷자락을 살짝 끌어당기며 웃어 보였습니다.

“아저씨, 수레를 반 뼘만 뒤로 물려주시면 옹기 독이 쏙 빠져나갈 수 있어요. 저 큰 기둥 깎는 소리 좀 들으면서 잠시만 숨을 돌려요!”

소성거사는 어깨를 으쓱이며 익살맞은 몸짓으로 옹기장이 앞을 빙글 돌았습니다. 험악했던 골목에 엉뚱한 웃음이 터져 나왔지요. 짐꾼은 머리를 긁적이며 슬그머니 수레를 뒤로 물렸고, 옹기장이 역시 미안한 낯빛으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에구, 승려인지 광대인지 모를 양반과 꼬마 녀석 때문에 화도 못 내겠네 그려.”

막혔던 길이 스르르 열리자, 사람들은 너나할것없이 쏟아진 다른 짐을 거들어 주며 소성거사의 노랫가락을 흥얼거렸습니다. 서먹하고 날카로웠던 공기가 봄눈 녹듯 부드럽게 풀려나갔지요.

소성거사는 땀을 훔치며 웃는 바우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습니다. 두 사람은 장터 골목 한구석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소리 없이 활짝 미소 지었답니다.

웃으며 서로를 배려하는 저잣거리 사람들

원효는 617년(진평왕 39)부터 686년(신문왕 6)까지 신라에 살았던 승려로, 한국 불교사에서 불교 대중화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입니다. 그의 생애와 행적은 문헌설화와 구비설화로 나뉘어 전해집니다.

문헌설화에서는 원효의 불법 설파와 불교 대중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불교 중심적 성향을 보이는 반면, 구비설화에서는 신이한 행적과 민중 영웅적인 면모가 주로 전승됩니다. 어머니가 유성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잉태하여 밤나무 밑에서 해산할 때 오색구름이 덮였다는 탄생 설화를 비롯해, 의상과 함께 중국으로 가던 중 동굴에서 마신 물이 시체 썩은 물임을 깨닫고 유학을 포기한 일화 등이 전해집니다.

또한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 주겠는가. 하늘 받칠 기둥을 깎겠다’고 노래하여 태종(김춘추)이 그 의미를 파악하고 요석공주와 동침하여 설총을 낳게 한 전승, 속복으로 갈아입고 ‘소성거사’라 칭하며 불법을 설파한 일화 등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밖에도 구비설화에는 중국 오대산의 승려를 구한 일화, 운홍사를 지어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주하게 한 일화, 온양면 운화사 도통골에서 물을 뿌려 불국사 남쪽의 불을 끈 일화, 사명당과의 점괘 내기, 도적을 교화해 부석사와 영혈사를 지은 신이한 행적들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원효의 생애와 불교 대중화 활동을 설명하는 문서형 비주얼
불교 대중화를 이끈 선구적 승려 원효의 역사적 의의를 담은 시각 자료

오늘날 원효는 어려운 경전에 머물지 않고 대중의 삶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진리를 전파한 선구적인 승려로 기억됩니다. 기록과 설화를 통해 전해지는 그의 파격적인 행적과 민중 친화적인 모습은 한국 역사와 문화 속에서 폭넓은 영감을 주는 이야기로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본문의 이야기 속에서 원효가 617년부터 686년까지 신라에 살았던 승려라는 점, 속복을 입고 소성거사라 칭하며 불법을 설파했다는 점, 그리고 ‘자루 없는 도끼’를 노래했다는 전승 기록은 역사적 사실 및 문헌에 근거합니다.

다만 저잣거리에서 소성거사를 경계하던 아이 ‘바우’의 인물 설정, 좁은 골목길에서 벌어진 옹기장이와 짐꾼의 다툼, 그리고 바우의 나물 바구니가 쏟아지는 등의 구체적인 일상 소동은 이야기의 전달력과 감동을 높이기 위해 창작된 허구적 요소입니다. 이러한 창작 설정은 실제 역사적 사건이나 전설 자체로 승격되지 않으며 허구적 경계 내에서만 유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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