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칼과 된장 바가지: 삼돌 아저씨를 구한 장독대와 객귀물리기

해질녘 끙끙 앓는 삼돌 아저씨에게 객귀가 들렸다는 소문이 돈 마을, 할머니는 식칼과 된장 바가지를 들고 마당으로 나섭니다. 우리 민족의 저장 발효식품인 된장과 얽힌 장독대 신앙 및 객귀물리기 세시풍속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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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저녁에 번진 끙끙 앓는 소리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마을 고샅길에 긴 그림자가 깔리던 때였습니다. 경북 안동시 임하면 신덕2리 마을 안쪽, 삼돌 아저씨네 사립문 안에서 낮게 끓어오르는 신음이 새어 나왔지요.

“아이고, 배야. 아이고, 머리야…….”

낮에 이웃마을 잔칫집에 다녀온다며 성큼성큼 나섰던 삼돌 아저씨가, 돌아오자마자 마루에 털썩 쓰러지더니 아랫목을 뒹굴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문밖을 서성이던 이웃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혀를 찼지요.

“점심때 남의 집에서 잔치 음식을 급하게 얻어먹었다더니, 체한 건가?”

“글쎄요, 안색이 누렇게 뜨고 사지가 차디찬 게 예삿일이 아닌데요.”

그때 사랑채에서 지팡이를 짚고 나오신 할머니가 문지방 너머를 매섭게 살피셨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는 아저씨의 이마를 짚어보더니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셨지요.

“단순히 얹힌 게 아니다. 남의 집 음식을 잘못 얻어먹고 객구가 단단히 들러붙었어. 캄캄한 밤이 다 내리기 전에 서둘러 객귀를 물려내야 한다!”

할머니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마당에 서 있던 순돌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답니다.

사랑채 문지방 너머 환자의 상태를 매섭게 살피는 할머니

바가지에 끓여낸 짭조름한 객구밥

“순돌아, 멍하니 서 있지 말고 부엌으로 뛰거라! 해 다 떨어지면 뜬귀신 쫓기가 열 배는 더 힘들어져.”

할머니의 재촉에 순돌이는 단숨에 부엌 문턱을 넘었습니다. 할머니는 무쇠솥 옆에 서서 손을 재빠르게 놀리셨지요.

“장독에서 묵은 된장 한 숟갈 푹 떠 오고, 찬장에 든 식은 밥이랑 김치, 낮에 무친 나물도 몽땅 솥에 넣어라. 고춧가루도 한 꼬집 잊지 말고!”

순돌이는 가슴이 두근거려 허둥대면서도 할머니가 일러준 대로 된장독에서 구수한 된장을 퍼 올렸습니다. 솥 안에서 물이 보글보글 끓자 된장을 풀고, 밥과 숭덩숭덩 썬 김치, 나물과 붉은 고춧가루를 한데 털어 넣었지요. 매콤하고 짭짤한 냄새가 자욱한 김을 타고 부엌 가득 번졌습니다.

“할머니, 다 끓었는데요!”

“오냐, 어서 널찍한 바가지에 퍼 담아라. 찬장에 둔 날카로운 식칼도 한 자루 챙겨 오고!”

순돌이는 김이 펄펄 나는 바가지를 양손으로 조심스레 받쳐 들고, 할머니는 부엌칼을 쥔 채 어둑해진 마당을 가로질러 삼돌 아저씨의 방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습니다.

장독에서 구수한 된장을 퍼 올리는 순돌이

생콩 세 알의 소동

방 안은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아 어둑어둑했습니다. 이불을 덮고 웅크린 삼돌 아저씨의 거친 숨소리만 방 안을 채우고 있었지요. 할머니는 들어서자마자 쥐고 있던 식칼 등으로 밥 담긴 바가지전을 탕탕 내리치셨습니다.

“썩 물러가라! 남의 집 귀한 사람 괴롭히지 말고 이 밥이나 먹고 썩 꺼져라!”

쩌렁쩌렁 울리는 쇳소리에 방 안 공기가 서늘하게 얼어붙었습니다. 순돌이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주머니에서 미리 쥐고 있던 생콩 세 알을 꺼내 아저씨에게 건넸지요.

“아, 아저씨! 이거 세 알 꼭꼭 씹어서 바가지에 퉤 뱉으셔야 해요!”

그런데 말이지요, 잔뜩 겁을 집어먹은 순돌이의 손이 사시나무 떨듯 바르르 떨렸던 모양입니다. 아저씨 손에 콩을 쥐여주려다 그만 손가락을 헛디뎌, 콩알 하나가 삼돌 아저씨의 콧잔등을 톡 치고는 방바닥 요 밑으로 도르르 굴러 들어가 버렸지 뭡니까.

“어쿠, 내 콩!”

순돌이가 기겁을 하며 엉덩방아를 찧고는 요 밑을 허겁지겁 뒤적거렸습니다. 그 꼴을 멍하니 지켜보던 삼돌 아저씨가 기가 찬다는 듯 헛바람을 들이켜더니, 배를 움켜쥔 채 참지 못하고 풋 웃음을 터뜨렸답니다.

“푸핫…… 야, 순돌아. 귀신 쫓으러 와서 사람 콧구멍을 쑤시면 어쩌자는 게냐…… 큭큭.”

무겁고 두렵기만 하던 방 안의 긴장이 순식간에 탁 풀려나가는 순간이었지요.

바닥에 떨어진 콩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삼돌 아저씨

칼날을 세우고 대문을 향하여

아저씨의 웃음소리에 얼굴이 벌게진 순돌이가 가까스로 콩을 찾아 다시 건넸습니다. 아저씨는 남은 생콩 세 알을 입에 넣고 오도독오도독 씹어 객구밥 바가지 속에 탁 뱉어냈지요. 할머니는 눈을 부라리며 서슬을 잃지 않고 식칼 끝으로 바가지의 붉은 국물을 콕 찍어 아저씨의 바짝 마른 입술에 쓱 흘려 넣으셨습니다.

“옳지. 자, 이제 머리카락을 훑는다!”

할머니는 식칼 날로 아저씨의 머리칼을 세 번 쓸어내려 바가지에 대고 털어내셨고, 삼돌 아저씨는 가르쳐준 대로 바가지 안쪽을 향해 침을 세 번 탁, 탁, 탁 뱉었지요. 방 안의 나쁜 기운을 모조리 바가지에 담아내는 서슬 퍼런 몸짓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남은 국물을 손에 묻혀 삐걱거리는 방 문고리를 쓱쓱 씻어내더니, 방문을 덜컥 젖혀 마당을 향해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쥐고 있던 식칼을 마당 한복판으로 휙 던졌지요.

탁!

칼은 흙바닥에 떨어졌으나 칼끝이 그만 안채 안방 쪽을 향하고 말았습니다.

“아직 덜 나갔구나!”

할머니가 혀를 차며 칼을 다시 집어 들자, 순돌이가 옆에서 주먹을 꼭 쥐며 소리쳤습니다.

“할머니, 제가 문 쪽으로 길을 열게요! 대문 쪽으로 훠이 훠이!”

할머니가 숨을 고르고 두 번째로 식칼을 마당에 힘껏 던졌습니다. 핑그르르 돌던 칼은 이번에야말로 서슬 퍼런 칼끝을 바깥 대문 쪽으로 똑바로 겨누며 흙바닥에 툭 꽂혔답니다.

마당에 식칼을 힘껏 던지는 할머니

대문 밖에 쏟아낸 시름과 나눈 온기

“칼끝이 밖을 보았다! 순돌아, 바가지 들고 쫓아오너라!”

할머니의 외침에 순돌이는 김이 식어가는 바가지를 번쩍 들고 어둑한 마당을 내달렸습니다. 사립문 밖 돌담 밑으로 달려 나간 할머니는 바가지째 넘겨받아 차가운 길바닥에 객구밥을 촤르르 쏟아버리셨지요.

“잡귀 잡신은 밥 배불리 얻어먹었으니 제 갈 길로 썩 멀리 물러가라!”

밥알과 붉은 국물이 흙바닥에 스며들며 서늘한 밤바람 속으로 흩어졌습니다. 가슴을 졸이던 순돌이가 그제야 긴 숨을 푸우 내쉬었지요.

두 사람이 방으로 돌아왔을 때, 참 신기한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이불을 덮고 끙끙 앓던 삼돌 아저씨가 어느새 베개를 괴고 일어나 땀방울을 훔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낯빛에 화색이 돌아와 있었지요.

“아이고, 할머니…… 순돌아. 아까 그 콩알에 코를 맞고 웃을 때부터 꽉 막혔던 명치끝이 쑥 내려가는 것 같더니만, 이젠 배앓이가 씻은 듯 가셨네.”

할머니는 헛기침을 큼큼 하시며 식칼을 행주로 닦아내셨습니다.

“거봐라. 남의 집 밥 함부로 얻어먹고 탈나지 말라고 된장 풀어서 쫓아낸 게지. 순돌이 녀석이 허둥대지 않았으면 귀신도 안 웃고 안 도망갔을 게다.”

그 말에 순돌이와 삼돌 아저씨는 마주 보며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캄캄하게 내려앉은 시골 마을의 밤, 구수한 된장내가 남아 있는 방 안에는 이웃들이 서로를 살뜰히 챙겨낸 따스한 온기만이 그득했답니다.

사립문 밖 길바닥에 객구밥을 쏟아붓는 할머니

된장의 정의와 역사

된장은 콩을 삶아서 띄운 메주와 소금물을 옹기 독에 넣어 장기간 숙성시킨 뒤 우러난 간장을 떠내고 남은 건더기를 계속 숙성시켜 만든 저장 발효식품입니다. 삼국시대 신라 신문왕 혼인 당시 납채품으로 ‘장시’가 기록된 이래, 『고려사』의 흉년 구휼 시 된장 배급 기록, 『조선왕조실록』의 하사품 및 군사 부식 기록 등 오랜 역사 속에서 필수 부식이자 의례용 물품으로 전해졌습니다. 조선시대 조리서인 『산림경제』와 19세기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등에도 장 담그는 방법과 관리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 담그는 날의 택일과 금기

된장을 담그는 날은 대개 정월대보름부터 삼월삼짇날 사이의 말날, 닭날, 돼지날 등 유모일(有毛日)을 선호하는 주술적 택일 풍속이 있었습니다. 이는 말은 장이 맑아지고, 닭은 달아지며, 돼지는 꿀처럼 달아지기를 바라는 유감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된장을 담글 때 혹시 튀는 침을 막기 위해 한지를 입에 물고 진행하는 금기가 전해졌습니다.

장독 의례와 신앙

조상들은 장독에 왼새끼, 숯, 흰색 한지, 붉은 고추를 꽂은 금줄을 두르고 버선본을 거꾸로 붙여 부정을 막는 주술적 의례를 행했습니다.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위치한 명재 윤증 고택에서는 장독에 버선본을 거꾸로 붙이고 장이 꿀처럼 달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꿀독’이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호남지방의 ‘철륭’ 또는 ‘철륭 할마이’, 중·남부지방의 ‘칠성’, 영남지방의 ‘이월 할매’ 등 장독과 장독대를 관장하는 다양한 신앙이 지역별로 전승되어 왔습니다.

주술적 의례와 가치관

된장은 식생활을 넘어 ‘객귀물리기’, ‘동티잡이’, ‘액막이’, 측신의 노여움을 푸는 주술적인 의례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경북 안동시 임하면 신덕2리 마을에서는 객귀가 들렸을 때 된장·물·밥·김치·나물·고춧가루로 끓인 ‘객구밥’을 준비하고, 식칼과 바가지를 이용해 위협하며 칼을 던져 방향을 점치는 객귀물리기 풍속이 전승됩니다. 또한 장맛을 가지고 그 집안의 가풍, 인심, 흥망을 가늠하는 가치관이 형성되어 "장이 단 집에 복이 많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흉한 일이 생긴다" 같은 속담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대화, 순돌이의 실수로 콩을 떨어뜨린 소동이나 감정적 교류 등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허구적 창작 요소입니다. 다만 경북 안동시 임하면 신덕2리에서 전승되는 객귀물리기 의례의 실제 절차(된장과 밥, 김치, 나물, 고춧가루를 끓인 객구밥 준비, 칼로 바가지 치기, 생콩 세 알 씹어 뱉기, 칼끝으로 국물 흘리기, 머리카락 훑기, 침 뱉기, 문고리 씻기, 칼끝이 대문을 향할 때까지 던지는 행위 등)는 민속 기록의 사실을 엄격히 반영하여 구성되었습니다.

관련 장소

명재 윤증 고택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장독에 버선본을 거꾸로 붙이고 '꿀독'이라고 외쳤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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