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지 않는 맑은 대설 아침, 보리밭을 걱정하는 돌이와 할아버지의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24절기 세시풍속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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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바른 마루와 김형수의 시 한 수
스물한 번째 절기인 대설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바깥바람은 제법 코끝을 아리게 스쳤지만, 마당 안쪽 양지바른 마루 위에는 겨우내 아껴둔 듯 따사로운 햇살이 길게 내려앉았지요. 소설을 지나 동지로 가는 길목, 음력 11월의 이맘때는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한 농부들이 오랜만에 허리를 펴는 농한기였습니다. 곳간마다 가을내 거둔 나락과 곡식이 그득하여 당분간 끼니 걱정 없이 든든한 나날이었답니다.
할아버지는 돋보기안경을 콧등에 걸치고 책 한 권을 무릎에 얹은 채 나지막이 시를 읊고 계셨습니다. 소당 김형수 선생이 쓴 『농가십이월속시』였지요.
“호랑이는 짝을 찾고, 사슴뿔은 절로 떨어지며, 지렁이는 땅속 깊이 웅크린다…….”
마루 끝에서 팽이를 깎던 돌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호랑이며 사슴이라는 말에 눈이 동그래진 아이는 무릎걸음으로 할아버지 곁에 바짝 다가앉았지요.
“할아버지, 지금 밖은 그냥 춥기만 한데요? 호랑이가 짝을 찾는지 지렁이가 숨었는지 어떻게 아셔요?”
돌이가 눈을 반짝이며 묻자, 할아버지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허허 웃으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땅과 짐승들은 제 갈 길을 찾아 겨울 채비를 마친단다. 지렁이도 얼지 않으려고 흙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단잠을 자는 때가 바로 이 대설이란다.”

눈은 보리의 이불이라는데
돌이는 마당 너머 밭둑을 멀거니 바라보았습니다. 지난가을에 심어놓아 이제 겨우 손가락 한 마디만큼 파릇하게 올라온 보리 싹들이 차가운 북풍에 파르르 떨고 있는 듯 보였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할아버지. 오늘은 큰 눈이 온다는 ‘대설’이잖아요. 동네 어르신들이 눈은 보리의 도톰한 솜이불이라고 하셨어요. 눈이 푹신하게 덮여야 겨우내 얼어 죽지 않고 내년에 풍년이 든다고요. 그런데 왜 하늘은 저렇게 파랗기만 하고 눈 한 송이 안 내릴까요?”
돌이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마당 너머 먼 산을 바라보며 찬찬히 일러주셨습니다.
“대설이라는 이름은 본래 옛날 중국 화북지방의 날씨를 보고 지은 것이란다. 거기는 이맘때 눈이 무섭게 쏟아졌을지 몰라도, 우리 땅은 반드시 대설이라 해서 눈이 쏟아지는 법은 드물단다.”
“그럼 우리 보리는요? 눈 이불도 못 덮고 저 찬바람을 맨몸으로 맞다가 꽁꽁 얼어 죽으면 어떡해요?”
돌이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습니다. 발까지 동동 구르며 들판의 보리 싹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돌이의 표정이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었지요.

마당의 짚단을 안고 달린 아이
할아버지가 무어라 더 타이르기도 전에, 돌이는 마루를 박차고 헛간으로 내달렸습니다. 가을 타작을 하고 묶어둔 볏짚 단이 수북이 쌓여 있었지요.
‘눈이 안 오면 내가 이불을 덮어주면 되지!’
돌이는 제 몸집만 한 짚단을 두 팔 가득 껴안고 밭으로 뜀박질을 쳤습니다. 찬바람이 이마를 때렸지만 짚단을 품에 안은 품새가 매서웠지요. 밭고랑에 닿자마자 조심스레 무릎을 꿇고 푸릇한 보리 싹 위에 짚을 가지런히 펴 얹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
하지만 짚단 하나로 덮을 수 있는 밭뙈기는 신발 두 짝 크기 남짓이었습니다. 그때 휭 바람이 불어오자 애써 얹어둔 짚검불마저 흩날려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지요. 돌이는 다시 헛간으로 달려가 짚을 한 아름 안아 왔지만, 끝없이 펼쳐진 너른 보리밭을 다 덮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네 번째로 짚을 나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돌이는 그만 고랑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휑한 들판을 올려다보자 왈칵 눈물이 솟구쳤지요.
“너무 넓어…… 짚이 모자라요, 할아버지…….”

차가운 흙 속에 숨은 다정한 숨결
어느새 뒤따라온 할아버지가 밭고랑에 무릎을 낮추고 앉아 돌이의 흙 묻은 무릎을 털어주셨습니다. 그러고는 아이의 작은 손을 가만히 쥐어 차가워진 손가락을 감싸 안으셨지요.
“돌이야, 여기 네 손으로 땅을 살살 긁어보련.”
돌이는 영문을 모른 채 손가락 끝으로 파릇한 싹 옆의 마른 흙을 살짝 파헤쳤습니다. 겉은 빳빳하게 마르고 얼어붙은 듯했으나, 손가락 한마디 깊이만 들어가자 놀랍게도 촉촉하고 부드러운 흙의 기운이 손끝에 닿았습니다. 그 속에서 보리 뿌리가 하얗고 단단하게 땅 밑을 움켜쥐고 있었지요.
“보아라. 겉에는 서릿바람이 불어도, 땅속 깊은 곳은 어머니 품처럼 훈훈하단다. 보리는 눈 이불이 내려주면 더없이 고맙겠지만, 눈이 오지 않아도 제 뿌리를 깊이 내려 땅의 온기로 겨울을 버텨낸단다. 아까 시에서 읽은 지렁이도 이 깊은 흙속에 몸을 둥글게 말고 봄을 기다리고 있지 않더냐.”
돌이는 손끝에 닿는 축축하고 묵직한 흙내음을 가만히 맡아보았습니다. 앙상하게 추위에 떨고만 있는 줄 알았던 작은 싹이, 실은 땅속 깊은 곳에 든든하게 닻을 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리가…… 생각보다 아주 씩씩하네요?”
돌이의 말에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겨울 들판이 품은 깊은 고요
돌이는 흐트러졌던 짚 몇 줄기를 얌전히 모아 밭둑에 내려놓았습니다. 하늘을 원망하거나 눈을 재촉하며 발을 구르던 조급함이 어느새 씻은 듯 가라앉아 있었지요.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감싸 안고, 눈이 오지 않아도 땅의 품속에서 묵묵히 제 계절을 견뎌내는 것이 들판의 법도였습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 돌아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넉넉한 곳간 문을 열어 달콤하게 말린 곶감 두 개를 꺼내 돌이의 손에 쥐여주셨지요. 볕 바른 마루에 걸터앉아 곶감을 오물거리며 바라보는 들판은 아침나절처럼 황량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눈 한 점 없이 맑고 바람은 찼지만, 메마른 흙 속에서는 지렁이가 단잠을 자고 보리 싹이 보이지 않는 힘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눈 덮인 겨울 못지않게, 스스로 웅크려 봄을 준비하는 대설의 들판은 그 자체로 커다란 품을 지닌 다정한 이불이었답니다.

대설의 정의와 시기
대설(大雪)은 24절기 중 스물한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소설(小雪)과 동지(冬至) 사이에 위치한다. 양력으로는 12월 7일이나 8일 무렵에 해당하며, 태양의 황경이 255도에 도달한 때를 말한다. 동양에서는 음력 10월의 입동·소설, 음력 11월의 대설·동지, 12월의 소한·대한을 겨울로 여기며, 서양에서는 추분 이후 대설까지를 가을로 여긴다.
명칭의 유래와 실제 기후
‘대설’이라는 이름은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재래 역법의 발상지이자 기준 지점인 중국 화북지방의 계절적 특징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 반드시 이 시기에 적설량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한겨울의 농한기와 생활상
음력 11월은 동지와 함께 한겨울을 알리는 시기로, 농부들에게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농한기이다. 가을 동안 수확한 곡식이 곳간에 가득 쌓여 당분간 끼니 걱정을 하지 않는 풍성한 시기이기도 하다.
자연 현상과 문헌 기록
옛 중국에서는 대설부터 동지까지의 기간을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초후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중후에는 범이 교미하며, 말후에는 여지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또한 19세기 중엽 소당(嘯堂) 김형수(金逈洙)가 지은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에는 한겨울 11월의 절기와 함께 호랑이 교미, 사슴뿔 빠짐, 갈단새 불명, 지렁이 칩거, 염교 싹 틔움, 마른 샘 움직임 등의 자연 현상과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눈과 관련된 믿음과 속담
대설 당일에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는 믿음이 전해지나, 실제로 이날 눈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 이와 관련하여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전해지는데, 이는 눈이 많이 내리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함으로써 동해(冬害)를 적게 입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날의 대설
오늘날 대설은 24절기의 하나로서 달력 속에서 겨울이 깊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계절적 표지로 남아 있다. 과거처럼 농한기를 보내거나 보리밭의 작황을 가늠하는 농경 사회의 직접적인 생활 규범으로 작동하지는 않지만, 계절의 흐름과 자연의 변화를 돌아보는 세시풍속의 의미로 전해지고 있다.



허구와 사실의 경계
본문에 등장하는 돌이가 보리밭에 볏짚을 덮어주려던 소동이나 할아버지와 나눈 대화 등의 서사는 전통문화 소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이야기이다. 대설에 눈이 오지 않아 보리를 걱정하는 아이의 모습이나 흙 속의 온기를 확인하는 과정은 문헌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 전개를 위해 창작된 허구적 내용이므로 실제 역사적 사실과 구분하여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