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황소가 누워 있다는 칠석마을 마당에 볏짚과 통대나무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거대한 고의 숨결이 꿈틀대기 시작합니다. 광주 칠석 고싸움놀이의 유래와 전통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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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가 누운 마을과 거위 울음소리
광주 칠석마을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있답니다. 마을 형세가 마치 거대한 황소가 편안히 누워 있는 모양새인데, 땅의 기운이 어찌나 억세고 강한지 개를 기르면 쉬이 자라지 못해 집집마다 개 대신 거위를 길렀다고 하지요.
옛날에 마을을 지나던 한 도사가 이르기를, 땅의 드센 기운 때문에 마을 청장년들이 상하지 않으려면 터를 꾹 눌러주어야 한다고 일렀답니다. 그래서 소의 고삐를 할머니당산인 커다란 은행나무에 단단히 묶고, 소 입에 해당하는 자리에는 여물통을 닮은 연못을 팠으며, 꼬리 쪽에는 일곱 개의 돌을 얹어 지세를 다스렸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 거센 땅의 기운을 다스리며 한 해 농사의 풍년을 빌던 놀이가 바로 ‘고싸움놀이’였어요. 옷고름이나 노끈으로 맺은 고와 꼭 닮은 거대한 놀이 기구 두 개를 서로 맞붙여 겨루는 이 놀이는 1940년경에 맥이 끊겼다가, 1969년 7월 지춘상 교수가 마을 어른들의 기억을 모아 다시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답니다.

마당에 쌓인 볏짚과 대나무
설을 쇠고 음력 초열흘이 가까워지자, 칠석마을 넓은 마당에는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볏짚단이 산더미처럼 쌓였어요. 자그마치 볏짚 삼백 다발에, 어른 손목만 한 직경 삼 센티미터의 통대나무가 마흔 개도 넘게 실려 왔지요.
서부의 일꾼들을 이끄는 만돌은 짚단을 툭툭 털며 긴 숨을 내쉬었어요. 굵직한 통나무 지릿대와 멜대를 바라보는 그의 이마에 벌써부터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답니다.
“자, 다들 정신 바짝 차립시다! 이 고는 그냥 짚더미가 아니요. 우리 서부 장정 수십 명이 어깨에 메고 저 거친 벌판으로 내달려야 할 놈이란 말이오.”
만돌의 호통에 청년들이 통대나무를 단단히 감싸 쥐며 짚을 꼬아 엮기 시작했어요. 볏짚 특유의 구수한 냄새와 팽팽하게 당겨지는 새끼줄 소리가 온 마을 가득 퍼져 나갔습니다.

동부와 서부의 깃발
그 시각, 마을 반대편 동부 마당에서도 만만치 않은 기세로 함성이 터져 나왔어요. 동부의 기운을 북돋우는 청년 동수가 흰 바탕에 남색 띠를 두른 커다란 농기를 번쩍 치켜들었기 때문입니다. 펄럭이는 깃발 복판에는 굵고 검은 글씨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여덟 글자가 또렷하게 박혀 있었지요.
“어이, 만돌 형님! 서부 깃발은 아직 누워 있는게요? 올 정월에는 우리 동부가 기세를 잡을 테니 그리 아시오!”
동수가 넷이나 되는 영기를 앞세우며 소리치자, 만돌도 지지 않고 서부의 농기를 힘차게 세웠습니다. 서부 농기는 흰 바탕에 붉은 띠가 선명하게 둘러져 있어서, 푸른빛의 동부 깃발과 마주 서자마자 허공에서 팽팽한 불꽃이 튀는 듯했어요.
“허허, 말로만 이기면 농사 다 지었게? 서부가 이겨야 온 마을에 풍년이 든다는 옛말도 잊었는가!”
두 마을 사람들의 눈빛에는 지고 싶지 않은 자존심과 승부욕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삐걱거리는 통나무 지릿대
그런데 말이지요, 문제는 그 거대한 고의 몸집을 엮어 맞출 때 터지고 말았답니다. 길이가 칠 미터나 되는 육중한 통나무 지릿대를 가운데 꿰어 넣고, 장정들이 멜 멜대와 Y자 모양의 굉갯대를 단단히 물리려던 찰나였어요.
“우지끈!”
불길한 파열음과 함께 짚단 속에서 통대나무 하나가 비틀리며 튀어나왔습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지릿대가 한쪽으로 기우뚱 쏠리더니, 단단히 묶어두었던 새끼줄 매듭이 툭툭 풀려나간 것이지요.
“위험해, 물러서!”
만돌이 급히 소리치며 청년들을 밀쳐냈습니다. 거대한 고 머리가 바닥으로 쿵 무너지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어요. 양쪽 마을 사람들 모두 새파랗게 질려 숨을 들이켰습니다. 이대로 뼈대가 뒤틀리면 열엿새 날 밤 고싸움은커녕 고를 들어 올리지도 못할 판이었지요.

은행나무 아래서 건넨 말
마당에 차가운 침묵이 감돌 때, 할머니당산인 큰 은행나무 쪽에서 지팡이를 짚은 순금 할머니가 천천히 걸어왔어요. 할머니는 허물어진 고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더니, 흙투성이가 된 만돌과 굳은 얼굴의 동수를 번갈아 바라보았답니다.
“누워 있는 황소의 등을 눌러 세우는 일이 어찌 제 힘 하나만으로 되겠느냐. 동부든 서부든, 고가 성하지 못하면 싸움도 풍년도 없는 법이다.”
순금 할머니는 마을 어귀 연못과 일곱 개의 돌을 손짓으로 가리켰습니다.
“도사가 왜 은행나무에 고삐를 묶고 연못을 파게 했겠누? 거센 기운을 억누르려면 힘을 겨루기 전에 터부터 하나로 모아야 하기 때문이었지. 혼자 세우려 바둥거리지들 말고, 이음새를 함께 잡아보거라.”
할머니의 담담한 목소리에 성난 기세로 씩씩대던 장정들의 어깨가 슬며시 내려앉았습니다.
맞잡은 멜대와 다시 선 고
만돌은 깊은 숨을 내쉬며 흙 묻은 장갑을 벗었어요. 그러고는 맞은편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동수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손을 내밀었답니다.
“동수야. 네 굉갯대 다루는 솜씨가 동네에서 제일이지 않더냐. 이쪽 지릿대 밑을 좀 받쳐다오.”
동수는 뜻밖의 청에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씩 웃으며 소매를 걷어붙였어요.
“흥, 싸우기 전에 고가 부서져서 싱겁게 끝나는 건 저도 사양입니다. 가랫장 매듭부터 다시 맵시다!”
동부와 서부 청년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우르르 달라붙었습니다. 한쪽에서 지릿대를 어깨로 힘껏 받쳐 올리면, 다른 쪽에선 Y자형 굉갯대로 목을 괴고 굵은 새끼줄을 칭칭 감아 돌렸지요. 서로 땀을 튀기며 호흡을 맞추자, 기우뚱하던 거대한 고가 마침내 하늘을 향해 우뚝 고개를 치켜들었습니다.
음력 초열흘, 타오르는 신명
음력 초열흘이 지나자 칠석마을 들판은 딴 세상이 되었어요. 마침내 제 모습을 갖춘 동부와 서부의 두 고가 각각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고, 징과 꽹과리 소리가 온 들판을 울렸답니다.
“얼씨구! 지화자 좋다!”
고를 멘 수십 명의 장정들이 발을 구를 때마다 땅이 쿵쿵 울렸습니다. 청년들은 멜대를 어깨에 단단히 메고 마을 안팎을 돌며 기세를 올렸고, 아이들과 아낙들은 풍물패 뒤를 따르며 소리 높여 흥을 돋웠지요. 동서부의 고는 서로 마주칠 때마다 으르렁대듯 머리를 들썩이며 열엿새 날 밤의 대격돌을 예고했습니다.

정월 열엿새 달밤의 거대한 격돌
마침내 정월 열엿새 날 밤이 깊었습니다. 차가운 겨울밤 하늘에는 보름을 막 넘긴 달빛이 시퍼렇게 쏟아져 내렸어요. 들판 한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동부의 남색 깃발과 서부의 붉은 깃발이 팽팽하게 마주 섰습니다.
“밀어라! 더 높이 들어!”
만돌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서부의 고가 허공으로 번쩍 솟구쳤습니다. 맞은편에서는 동수가 이끄는 동부의 고가 땅을 박차며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 왔지요.
“쿵——!”
두 개의 거대한 고 머리가 밤하늘 한복판에서 정면으로 맞부딪쳤습니다. 볏짚이 거칠게 부벼지는 소리와 함께 장정들의 거친 숨소리가 허공으로 하얗게 피어올랐어요. 밀리지 않으려는 자와 위에서 내리누르려는 자의 힘줄이 터질 듯 팽팽하게 맞물렸답니다. 그야말로 땅 위의 황소가 벌떡 일어난 듯한 장엄한 장관이었습니다.
함성 속에 피어난 풍년의 약속
한 치의 양보도 없던 싸움 끝에, 서부의 고가 마지막 힘을 다해 동부 고의 머리를 짓누르며 기우뚱 아래로 밀어내렸습니다.
“와아아아!”
서부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오랜 속설 때문이었을까요. 승패가 갈리자마자 동부도 서부도 구분 없이 온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터져 나오는 함성을 질렀습니다. 지쳐 쓰러진 장정들은 서로를 끌어안았고, 만돌과 동수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활짝 웃는 얼굴로 굳게 맞잡은 손을 흔들었지요.
1940년경 끊겼다가 다시 되살아난 이 벅찬 고싸움놀이는 그렇게 이듬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며 소중히 이어지게 되었답니다. 마을의 드센 땅을 꾹 누르고 한 해의 복을 빌던 그날 밤의 뜨거운 열기는, 지금도 칠석마을 사람들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고싸움놀이의 정의와 유래 배경
광주 칠석마을에서 전승되는 ‘고싸움놀이’는 옷고름이나 노끈으로 멘 고와 비슷한 형태의 놀이 기구인 고 두 개를 서로 맞붙여 겨루는 전통 민속놀이입니다. 정확한 유래에 대한 문헌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며 구술 자료에만 의존하여 전해지고 있습니다.
칠석마을의 구술 전승에 따르면, 마을은 황소가 누워 있는 형국으로 지기가 무척 강해 개 대신 거위를 길렀다고 전해집니다. 옛날 어떤 도사가 마을을 지나며 지세를 누르기 위해 은행나무를 심고 소 입에 연못을 팠으며, 고삐를 할머니당산인 은행나무에 묶고 꼬리에는 일곱 개의 돌로 눌러 놓았다는 전설과 지세 제어 의례가 함께 전승되고 있습니다.
놀이 시기와 속설 및 제작 도구
고싸움놀이는 설을 쇠고 음력 초열흘 경부터 시작해 열엿새 날 밤에 본격적으로 벌어집니다. 놀이 과정에서는 서부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전해집니다.
거대한 고를 제작하는 데에는 볏짚 200~400다발, 직경 3cm의 통대나무 30~50개, 통나무 지릿대(20cm, 5~9m), 가랫장 및 멜대(통나무 15cm, 4~5m), Y자형 굉갯대(15cm, 2~3m) 등이 소요됩니다. 또한 행렬에 사용되는 동·서부 농기는 흰 바탕에 각각 남색 띠와 홍색 띠를 두르고 검은 글씨로 ‘농자천하지대본’을 적었으며, 동·서부에 각각 4개씩의 영기가 사용됩니다.
역사적 단절과 재구성
고싸움놀이는 1940년경에 단절되었으나, 1969년 7월 지춘상 교수에 의해 재구성되었습니다. 이후 1969년 10월 대구에서 개최된 제1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였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1970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참고 지역 민속 사례
전라남도 지역의 유사한 대보름 민속놀이로는 영산강 하류인 영암군 군서면 모정마을의 대보름 줄다리기(정월 10일~20일, 암수 쌍줄, 연목대, 받침대, 설소리꾼 참여)와 장흥읍 탐진강 변의 장흥 대보름 줄다리기(동짓달 보름 어린아이들의 고삿줄로 시작해 정월대보름 밤 어른들 참여) 등이 전해집니다.
오늘날의 전승과 보존
광주 칠석 고싸움놀이는 1969년 제1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을 계기로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된 이후,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소중한 전통 민속문화유산으로 보존되어 전승되고 있습니다.

허구와 사실의 경계 안내
본 해설에서 언급된 칠석마을의 와우형 풍수, 거위를 기른 내력, 도사의 예언과 은행나무·연못·일곱 개 돌에 관한 내용은 기록된 구술 전승 및 전설에 근거합니다. 또한 1940년경 단절되었다가 1969년 지춘상 교수에 의해 재구성된 과정,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 및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창작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 간의 구체적인 대화, 고 제작 과정에서의 돌발 위기 상황, 인물 간의 갈등과 협력 등의 서사적 요소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창작된 허구적 요소이므로 실제 역사적 사실과 구분하여 읽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