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잿빛 추위와 매서운 손돌바람 속에서 나룻터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돌이의 하루. 음력 10월 20일 뱃사공얼어죽은날의 유래와 전통 겨울 채비 풍속을 살펴봅니다.
갑자기 찾아온 매서운 첫 추위
늦가을 들판은 어제까지만 해도 볕이 퍽 따스했습니다. 그런데 음력 시월 스무날 아침이 되자마자 하늘빛이 잿빛으로 홱 바뀌더니, 문풍지가 파르르 떨릴 정도로 사나운 바람이 몰아쳤지요. 옛 문헌인 《동국세시기》에도 기록되어 있듯, 예부터 이날은 전국 어디서나 기온이 뚝 떨어지며 첫 추위가 닥쳐오는 때로 잘 알려져 있답니다. 사람들은 이 매서운 날을 두고 ‘뱃사공얼어죽은날’ 혹은 ‘손돌날’이라 불렀지요.
새벽 일찍 강 건너 장터 쪽 나룻터로 일손을 도우러 나섰던 아버지는 점심때가 한참 지나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돌이는 마당 한구석 댓돌 위에 올라서서 연신 까치발을 딛고 먼 강가를 바라보았지요. 바람은 옷깃을 파고들다 못해 살갗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 아렸답니다.

만돌 영감의 이야기와 차가운 바람
“할아버지, 강가 샛바람이 이렇게 사나운데 아버지는 왜 여태 안 오실까요? 배가 못 뜨는 건 아닐까요?”
돌이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묻자, 마당의 장독 덮개를 단단히 묶던 만돌 영감이 허리를 펴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영감의 수염 끝에도 어느새 하얗게 서릿발이 맺혀 있었지요.
“오늘이 바로 음력 시월 스무날, 뱃사공얼어죽은날이란다. 옛사람들은 이날 부는 매서운 바람을 두고 얼어 죽은 손돌의 원혼이 찾아온 것이라 여겼지. 바람이 워낙 억세니 배를 억지로 띄우지 못하고 뱃머리를 묶어 두느라 지체되는 게다. 지독하게 추운 날 배를 무리해서 몰았다간 큰탈이 나는 법이니까.”
돌이는 마당에 놓아둔 물바가지에 얇고 단단한 살얼음이 버석거리며 낀 것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아버지가 강바람 속에서 덜덜 떨고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요.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그럼 우리는 그냥 여기서 기다리기만 해야 해요?”
돌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묻자, 만돌 영감은 마당 구석에 쌓인 장작더미를 가리켰습니다.
“옛부터 이 손돌날 추위가 얼마나 매서운지를 보고 그해 겨울 채비를 가늠했단다. 오늘 추위가 이리 독한 걸 보면 올겨울은 뼈가 시리게 춥겠어. 추위가 심하면 겨울옷도 더 두껍게 짓고 문풍지도 바투 덧대야 하는 법이지. 바람 탓만 하며 발만 구르고 있으면 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따뜻한 방뼘 하나 내어드리지 못하지 않겠니?”
할아버지의 단호하면서도 다정한 말에 돌이는 번쩍 눈을 떴습니다. 두 손을 마주 비벼 입김을 후 불어넣은 돌이는 털레털레 마당 끝으로 내달렸지요. 가만히 앉아 불안해하기보다는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언 몸을 녹일 수 있도록 집안 채비를 마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답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마당
돌이는 바깥마당에 흩어져 있던 마른 장작을 한 아름씩 안아 부엌 문간으로 날랐습니다. 얼어붙은 나뭇가지가 옷자락을 긁었지만 멈추지 않았지요.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광에서 꺼낸 소금과 겨우내 먹을 푸성귀를 다듬으며 김장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날이 더 추워져 얼어붙기 전에 갈무리를 마쳐야 겨우내 걱정이 없는 까닭이었지요.
“돌이야, 찬바람 쐬지 말고 방에 들어가지 않고 그러니?”
어머니가 걱정스레 묻자 돌이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훔치며 씩씩하게 답했습니다.
“아궁이에 불 땔 장작은 제가 다 들여놓을게요! 아버지 오시면 바로 훈훈하게 쬘 수 있게요.”
돌이는 장독간 틈새로 찬바람이 새어 들지 않도록 짚북데기를 꼼꼼히 채워 넣고, 안방 장롱 깊숙한 곳에서 겨우내 입을 도톰한 무명 솜옷을 꺼내 아랫목에 가지런히 펼쳐 두었답니다. 빨갛게 얼어버린 손끝은 콕콕 쑤셨지만 마음만은 옹골차게 차올랐지요.

거센 바람을 뚫고 돌아온 온기
마침내 서산 너머로 붉은 해가 꼴깍 넘어가고 땅거미가 짙게 깔릴 무렵이었습니다. 사립문 밖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지요. 돌이가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털모자에 하얗게 서리를 얹은 아버지가 지게를 내려놓고 계셨습니다.
“아버지!”
돌이가 댓돌 아래로 뛰어나가자 아버지는 꽁꽁 얼어붙은 손을 내저으며 웃었습니다.
“허허, 오지 마라. 바람을 잔뜩 묻히고 와서 옷이 얼음장이다. 손돌바람이 어찌나 사납게 불던지 물결이 하얗게 뒤집혀 배를 묶어 두느라 진땀을 뺐지 뭐냐.”
돌이는 얼른 아버지의 차가운 손을 잡아끌고 따끈하게 덥혀진 방으로 모셨습니다. 미리 꺼내 둔 두툼한 솜옷을 둘러드리고, 부엌에서 펄펄 끓여 낸 장국 한 사발을 조심스레 건넸지요. 뜨끈한 국물을 들이켠 아버지가 얼었던 수염을 매만지며 한숨을 폭 내쉬자 비로소 집안에 훈훈한 웃음이 번졌습니다. 비록 손돌날의 첫 추위는 매섭고 사나웠지만, 다가올 겨울을 맞이할 채비를 단단히 마친 집안에는 그 어느 때보다 포근한 평온이 깃들어 있었답니다.

음력 10월 20일, 첫 추위가 찾아오는 ‘뱃사공얼어죽은날’
음력 10월 20일은 절기상 소설과 대설을 전후한 시기로, 전국적으로 기온이 급강하하고 큰 바람과 추위가 찾아오는 날입니다. 이 날은 속칭 ‘뱃사공얼어죽은날’ 또는 ‘손돌날’로 불리며, 그해 겨울 날씨를 가늠하고 겨울 채비를 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여겨왔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東國歲時記》를 비롯해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韓國歲時風俗》 등의 문헌에 수록되어 전해집니다.
추위의 유래와 민간 전승
이날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고 바람이 부는 현상에 대해 민간에서는 얼어 죽은 손돌의 원혼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지역에 따라 세부적인 전승 양상이 달라, 경북 군위 지역에서는 지독한 뱃사공이 몹시 추운 날씨임에도 배를 타고 나갔다가 얼어 죽었다 하여 이날을 ‘뱃사공고놈얼어죽은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지역별 풍속과 다양한 표현
뱃사공얼어죽은날을 맞이하는 방식과 부르는 이름은 지역에 따라 다양합니다. 추위의 심한 정도를 보고 겨울옷을 두껍게 지을지 덜 두껍게 지을지 정하며 겨울을 대비했습니다. 경북 달성에서는 이 날이 오기 전에 미리 김장을 담그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또한 충북과 경북에서는 이날 날씨가 따뜻한 것을 두고 ‘감투장이가 우는 날’이라 하여 감투가 잘 팔리지 않을 것을 염려했으며, 강원도에서는 이날 어김없이 닥치는 추위를 빗대어 ‘고놈죽은날’이라고 불렀습니다. 충남 금산에서는 ‘호랑이 붕알이 얼면, 동지 때나 되어 풀린다’라는 속담을 통해 매서운 추위의 지속성을 표현했고, 경남 양산과 의령에서는 이날 날씨가 추우면 그해에 안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뱃사공얼어죽은날은 《동국세시기》 등의 문헌에 기록된 전통 세시풍속으로 전해져 내려오며, 음력 10월 20일 무렵 찾아오는 첫 추위와 겨울 채비의 의미를 간직한 날입니다.

본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구체적인 대화 및 일상적인 행동 묘사는 이해를 돕기 위한 창작 허구입니다.
반면, 음력 10월 20일인 뱃사공얼어죽은날(손돌날)의 명칭과 이날 찾아오는 매서운 첫 추위 현상, 이를 손돌의 원혼과 연관 지은 민간 전승, 추위의 정도에 따른 겨울옷 준비 및 경북 달성의 김장 풍속, 그리고 《東國歲時記》 등의 문헌 기록과 각 지역별 명칭 및 속담은 수집된 사실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