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커다란 혹을 달고도 맑은 콧노래를 부르던 노인. 깊은 산속 빈집에서 도깨비를 만난 하룻밤의 비밀과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였다' 속담의 유래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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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책과 입에서 입으로 흐른 이야기
우리가 어릴 적부터 자주 듣던 혹부리영감 이야기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 입을 통해 따뜻하게 전해 내려왔답니다. 조선시대 중기 문신 강항이 남긴 『수은록(睡隱錄)』에도 이웃 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고, 훗날 1910년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물어집』을 거쳐 1915년 이후 일제강점기 교과서인 『조선어독본』에 실리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동화로 자리 잡게 되었지요. 이웃 나라 옛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으로 전해지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전승에서는 흥겨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참 큰 특징이랍니다.
산자락 아래 작은 마을에는 목 한쪽에 주먹만 한 혹을 단 두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마음씨 곱고 언제나 흥얼흥얼 맑은 소리로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돌쇠 영감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셈이 빠르고 욕심이 많아 늘 남의 것을 부러워하던 만복 영감이었지요. 겉보기에는 둘 다 목에 똑같이 무거운 혹을 달고 있었지만, 하루를 살아가는 마음가짐은 참으로 달랐답니다.

부서진 수레와 늦어진 산행
어느 날 아침, 돌쇠 영감은 땔나무를 하러 지게를 지고 산길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마을 어귀 고갯길을 막 지날 무렵, 길가에 털썩 주저앉아 끙끙 앓는 이웃 농부를 보게 되었지요. 수레바퀴가 돌부리에 걸려 부서지는 바람에 곡식 자루가 온 길바닥에 쏟아져 뒹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고, 돌쇠 영감님. 날이 저물기 전에 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데 바퀴 살이 다 부러져 버렸소.”
농부가 울상이 되어 손을 내저었습니다. 돌쇠 영감은 곧바로 지게를 내려놓으며 이마의 땀을 훔쳤습니다.
“사람 일이란 게 다 서로 돕고 사는 법이지요. 혼자 애태우지 마시고 어디 같이 한번 들어 봅시다.”
돌쇠 영감은 땔나무를 베러 가려던 생각도 잠시 잊은 채, 굵은 칡넝쿨을 끊어 와 깨진 바퀴 살을 단단히 얽어매고 흩어진 곡식 자루를 차곡차곡 다시 실어 주었습니다. 일이 끝났을 때는 이미 해가 서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 붉은 노을이 짙게 깔려 있었지요.

깊은 산속 빈집에서 울려 퍼진 노래
뒤늦게 산 깊숙이 오른 돌쇠 영감은 땔감을 몇 단 채 묶기도 전에 사방이 캄캄해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산속의 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들이닥쳤고, 험한 돌길을 더듬어 마을로 내려가기엔 너무 어두웠지요. 그때 숲 사이로 낡아서 삐걱거리는 초가 빈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돌쇠 영감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흙먼지가 쌓인 마루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고 밤바람은 뼈마디를 시리게 했지만, 영감은 무서움을 달래려 목청을 가다듬었지요.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 골 저 골 비추는 달아~ 춥고 어두운 밤길에도 네 얼굴 보니 시름이 다 녹는구나~”
탁 트인 돌쇠 영감의 구성진 노랫소리가 낡은 문살을 넘어 밤안개 자욱한 숲으로 울려 퍼졌답니다.

어둠을 뚫고 나타난 도깨비들
그런데 말이지요, 난데없이 마당 쪽에서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문이 덜컥 열리더니 털이 덥수룩하고 덩치가 커다란 도깨비들이 떼를 지어 들이닥쳤습니다. 돌쇠 영감은 깜짝 놀라 숨을 멈추었지요. 하지만 도깨비 우두머리는 성을 내기는커녕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가왔습니다.
“영감, 방금 그 구수하고 기막힌 소리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요? 우리 도깨비들도 온 산을 누비며 노래깨나 불렀지만 이토록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띄우는 소리는 난생처음 들었소!”
돌쇠 영감은 도깨비들이 무섭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여, 자기도 모르게 목에 달린 혹을 만지작거리며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저… 별것 아닙니다. 아마 평생 달고 산 이 목덜미의 혹 속에서 소리가 흘러나오는가 봅니다.”
그저 둘러댄 말이었지만, 도깨비들은 손뼉을 치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노래가 나오는 보물 주머니로구먼! 영감, 그 보물을 우리에게 파시오. 섭섭지 않게 재물을 두둑이 얹어 주겠소!”
도깨비 우두머리가 손을 뻗어 영감의 목을 툭 건드리자, 신기하게도 평생 떨어지지 않던 혹이 아무런 아픔도 없이 쑥 떨어져 나갔습니다. 도깨비들은 금은보화가 든 자루를 마루에 던져두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지요.

마을에 번진 엇갈린 말과 욕심
다음 날 아침, 혹을 떼어내어 목이 가뿐해진 돌쇠 영감이 보물 자루를 지고 마을로 내려오자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이웃들은 마당으로 몰려와 영감의 맨들맨들해진 목을 만져보며 신기해했지요.
이 소식을 들은 이웃 만복 영감은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만복 영감은 사람들을 붙들고 캐물었습니다.
“대체 어찌 된 일이오? 돌쇠가 신통한 부적이라도 주워 온 거요?”
그러자 한 이웃은 “글쎄, 산속 빈집에서 고운 노래를 불렀더니 도깨비들이 노래 주머니인 줄 알고 혹을 떼 갔다지 뭐요”라고 했고, 다른 편에 서 있던 이는 “아니요, 돌쇠가 도깨비들에게 특별한 보물 혹을 비싼 값에 팔아넘긴 거라던데요!”라며 서로 다른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만복 영감은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노래든 보물이든 무슨 상관이람. 혹만 떼고 금은보화만 챙겨 오면 그만이지!’ 욕심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만복 영감은 날이 저물기만을 기다렸답니다.

이웃을 지나치고 달음박질친 길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만복 영감은 큼직한 자루를 챙겨 들고 산으로 내달렸습니다. 그런데 산길 초입에서 땔나무를 너무 많이 져 휘청거리며 쓰러진 노파가 만복 영감을 보고 다급히 손을 내밀었습니다.
“만복 영감님, 다리가 삐어 일어날 수가 없구려. 나무 단 하나만 덜어 주시오.”
만복 영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습니다.
“내가 지금 남의 땔나무나 만져줄 만큼 한가한 줄 아시오? 갈 길이 바쁘니 저리 비키시오!”
만복 영감은 노파를 거칠게 뿌리치고는 오직 금은보화를 차지하겠다는 일념으로 어두워진 산속 빈집을 향해 숨을 헐떡이며 뛰어 올라갔습니다.

도깨비의 분노와 또 하나의 혹
빈집에 당도한 만복 영감은 땀을 닦을 새도 없이 마루에 걸터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흥겨움이 아니라, 도깨비를 얼른 불러내어 재물을 뺏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혀 억지로 목청을 쥐어짜 콧소리를 섞어 꽥꽥 노래를 부른 것이지요.
기괴한 소리에 질색하며 문을 박차고 나타난 도깨비 우두머리는 만복 영감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습니다.
“귀가 찢어질 것 같구나! 너는 대체 어디서 그런 고약한 소리를 내는 거냐?”
만복 영감은 돌쇠처럼 혹을 어루만지며 능글맞게 거짓말을 늘어놓았습니다.
“헤헤, 바로 이 목에 달린 혹이지요! 이 혹이야말로 세상의 온갖 고운 노래와 보물을 쏟아내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물건이랍니다. 자, 어서 금은보화를 주시고 이 신통한 혹을 떼어가시지요!”
그 말을 들은 도깨비 우두머리는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난번 영감의 말에 속아 떼어 간 혹에서도 노래 한 자락 나오지 않아 방구석에 버려두었거늘, 감히 우리를 또 속여 재물을 뜯어내려 하느냐? 거짓말쟁이 영감에게는 혹이 하나로는 모자란 모양이로구나!”
도깨비는 지난번 떼어갔던 돌쇠의 혹을 품에서 꺼내더니 만복 영감의 비어 있던 반대편 목덜미에 철썩 붙여버렸습니다. ‘혹 떼러 갔다가 혹을 하나 더 붙였다’는 속담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었지요.

문지방 너머로 건넨 따뜻한 온기
새벽녘, 양쪽에 커다란 혹을 매달아 목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만복 영감이 엉엉 울며 마을로 비틀거리며 내려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혀를 찼고, 만복 영감은 부끄러움과 설움에 겨워 사립문을 걸어 잠근 채 방구석에서 흐느꼈지요.
그때 조용히 사립문이 열리더니 돌쇠 영감이 땔나무 한 짐과 따끈하게 달인 약차 한 사발을 들고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돌쇠 영감은 만복의 방문을 살며시 두드렸습니다.
“만복 영감, 안에 계시오? 산바람이 꽤나 차가웠을 텐데 우선 이 따뜻한 차라도 한 모금 드시구려.”
만복 영감은 문을 조금 열고 퉁퉁 부은 눈으로 돌쇠를 바라보았습니다. 원망과 부끄러움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지요.
“나를 비웃으러 온 거요? 욕심을 부리다 이 꼴이 되었으니 속이 시원하겠구려.”
돌쇠 영감은 묵묵히 툇마루에 땔나무를 부려놓고는 만복 영감의 거친 손을 가만히 감싸 쥐었습니다.
“비웃기는요. 목에 무거운 짐을 달고 사는 설움을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 않습니까. 지난 일은 다 털어버리고, 날이 풀리면 나랑 같이 숲으로 가 마른 나물이나 캐러 갑시다.”
그 다정한 눈빛과 온기 어린 손길에 만복 영감의 굳어 있던 어깨가 천천히 풀려내렸습니다. 두 노인의 집 굴뚝에서는 어느덧 사이좋게 따스한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답니다.

혹부리영감 설화의 정의와 특징
‘혹부리영감’은 마음씨 착한 혹부리영감이 도깨비 덕분에 목에 난 혹을 떼어내고, 반대로 욕심 많은 영감은 도깨비 때문에 혹을 더 붙이게 되었다는 대표적인 전래 설화입니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의 거짓말과 반복되는 전개 구조를 지니며, 단순한 선악의 이분법적 보상과 징벌보다는 행위의 반복과 선후 관계에 따라 결과가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문헌 기록과 역사적 전파
이 설화는 조선시대 중기 문신 강항이 남긴 『수은록(睡隱錄)』에 일본에서 유명한 이야기로 기록되어 전합니다. 이후 1910년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물어집』에 수록되었고, 1915년 이후 일제강점기 『조선어독본』에 실리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화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카하시 도루가 한국에 처음 소개할 당시 일본의 이야기와 구조가 유사하여 역사적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한일 판본의 차이와 속담의 유래
한국과 일본의 전승 사이에는 흥미로운 차이가 존재합니다. 일본의 혹부리영감(瘤取り爺)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춤을 추는 반면, 한국의 전승에서는 흥겨운 노래를 부르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또한, 이 설화의 내용으로부터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였다”라는 속담이 유래하여 오늘날까지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이어지는 모습
‘혹부리영감’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다양한 아동용 도서와 매체를 통해 친숙한 전래동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설화의 결말에서 비롯된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였다”라는 속담은 무언가 문제를 해결하거나 이득을 보려다 오히려 더 큰 짐이나 손해를 떠안게 되는 상황을 이르는 관용구로 일상생활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설화와 역사적 사실의 경계
‘혹부리영감’ 이야기는 오랜 세월 구전되어 온 전래 설화로, 도깨비가 나타나 혹을 떼어주거나 붙이는 등의 신비로운 사건은 허구적 전승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다만 조선시대 문헌인 『수은록(睡隱錄)』과 일제강점기 교과서 수록 기록 등은 문헌 자료에 근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창작 동화나 서사물에서 다뤄지는 등장인물의 구체적인 성격이나 세부적인 일상 행동 묘사는 이야기의 흥미를 더하기 위한 허구적 재구성 영역에 해당합니다.